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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영혼의 울림, 아리랑과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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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2-17 21:45:22 수정 : 2014-02-17 22: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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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의식에 뿌리내린 ‘소리 문화’
남북한 하나로 잇는 ‘아리랑 정신’
요즘 한국문화의 중흥적(中興的) 분위기와 함께 지식인들의 모임에 가면 한국문화를 되돌아보는 이야기들이 많이 오간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아마도 미래로 도약하기 위한 조짐일 것이다. 한국문화의 집단무의식엔 무엇이 있을까. 한민족은 어느 나라보다 소리의 민족이고, 소리의 문화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동안 인류의 역사는 소리를 공기 중에 날려 보냈지만 요즘은 소리를 저장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이에 힘입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귀에 이어폰을 꼽고 소리와 더불어 사는 일상의 시대가 되었다.

‘소리’ 하면 우선 아리랑과 판소리가 떠오른다. 한국에는 ‘아리랑’이라는 민요가 있다. 정선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이 유명하지만 한국에는 수백 개의 아리랑 버전이 있다. 월드컵 전후에는 ‘상암 아리랑’이 귓전을 때렸다. 말하자면 ‘아리랑’ 앞에 기원한 장소나 가사의 의미를 붙여서 아리랑 변종이 나온다. 아마도 아리랑 변종은 한국 사람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아리랑’은 고개의 이름이자, 아기를 낳을 때의 산고(産苦), 혹은 어려운 민중의 삶의 표현이라고도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十里)도 못가서 발병 난다.” 여기서 ‘고개’라는 것이 바로 ‘그 너머’와 같은 의미이다. 아리랑은 ‘아라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최초의 아리랑인 정선아리랑이 본래 ‘아라리’라는 이름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한편 ‘아라리’라는 말에 대해서는 “(누가 내 마음을) 알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인은 “새가 운다”고 말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민족이다. 왜 새가 울까. “새가 지저귄다” “새가 노래한다”는 말은 여러 나라와 지역에 있다. 그러나 새가 운다는 말을 하는 민족은 한국 말고는 없다. ‘운다’는 말은 다분히 소리의 울림, 울음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인의 한(恨)은 판소리와 더불어 표현된다. 판소리와 그 창법은 그 백미이다. 판소리 창법은 수직적으로는 단전에서 소리를 뽑아 올려서 꺾는(고음에서 넘어 가는 소리) 기술이고, 수평적으로는 그네처럼 흔드는(swing) 소리이다. 판소리의 꺾는 소리는 음계상 끝이 없는 소리이다. 소리는 마치 아리랑처럼 ‘그 넘어(over there) 가는’ 소리인 것이다. 흔드는 소리는 서양의 ‘바이브레이션(vibration)=진동’과는 다른 고유의 소리이다. 판소리의 깊은 소리는 도저히 서양의 벨칸토 창법으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소리인 것이다. 소리는 왜 깊은 것일까. 소리는 본질적으로 중층적인 구조를 가진 감각이다. 그래서 그 깊이를 모른다고 한다. ‘운다’는 것은 한민족의 ‘소리’ 중심 사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는 것과 눈물은 다른 감각과 달리 감각의 일부에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서 반응하는 통각적인 것이다. 이는 소리의 반사적·투과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한국인은 음악 이외의 다른 예술작품을 접했을 때에 ‘영혼을 울린다’ ‘심금을 울린다’는 말을 잘 쓴다. 이는 매우 음악적 은유이다. 다시 말하면 음악을 최고의 예술로 생각한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다른 예술을 이것에(청각적인 것) 비유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서양 사람들은 매우 감동적인 예술작품을 만나거나 미(美)의 상황에 빠졌을 때에 ‘숨이 막힌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쓴다. 이는 그 대상을 보고 있다는 매우 시각적인 반응이다. 전자는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되고, 후자는 주체와 객체가 분리된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판소리는 외국인이 따라 부르기 어렵지만 아리랑은 여러모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2003년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이루어진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아리랑은 82%라는 높은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아리랑은 한국인의 정서 DNA다. 아리랑은 한국인의 소리 가운데서도 가장 일반적인 정서를 표현한 집단창작의 민요이다. 아리랑은 세계 민요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모성의 노래인지도 모른다. 아리랑은 러시아와 만주로 흩어졌던 카레이스키와 조선족이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불렀고, 지금도 세계 170여 나라에 흩어져 사는 우리 교민들이 고국과 가족을 생각하며 부르고 있는 노래이고, 남북이 만나면 함께 부르는 노래이다. 아리랑의 정신이야말로 남북한을 하나 되게 하는 정신이다.

외국의 문화학자와 음악가들은 한국의 아리랑을 듣고 놀란다. 첫째, 그 아름다운 선율에 놀라고 둘째, 크지 않은 땅에 무수히 많은 아리랑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란다. 실제 아리랑은 수십 종이 있는데, 우리네 사투리처럼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발전해왔다. 정선아리랑은 담담하며, 밀양아리랑은 꿋꿋하고, 진도아리랑은 넉넉하면서도 끈끈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강원도 아리랑은 무르고 보드라운 매력이 있다.

아리랑은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반복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부르기 쉽고 아름다운 선율 때문에 그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 노르웨이 출신의 가수 잉에르 마리는 아리랑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열린 구조로 되어 있고 어릴 적 오래된 자장가처럼 편안하다고 했다. 음악의 성공 가능성을 과학적인 소프트웨어로 분석한 결과, 미국인이 가장 많이 부르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10점 만점에 7점, 오케스트라 버전 아리랑이 8.9점이 나왔다고 한다. 아리랑은 한국문화의 모성의 승리인 것 같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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