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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마피아자본주의, 마피아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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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6-02 21:36:51 수정 : 2014-06-02 21: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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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속 들여다보면 ‘닮은 꼴’
돈·권력만 좇는 지도층 반성을
우리는 흔히 해방 후 약 70년 동안 변해 버린 남북한의 이질성과 격차를 많이 이야기한다. 또한 이러한 이질성과 격차를 두고 통일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예단하곤 한다. 특히 격차를 말할 때는 소득을 그 예로 든다. 현재 남북한의 소득격차는 약 20배(일인당 국민총소득)에 달한다고 한다. 해방 후 자의반타의반으로 남한과 북한은 서구가 만들어놓은 양대 체제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체제에 편입돼 들어갔다. 오늘에서 보면 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된 남한은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자본주의도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긴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대부분이 그것을 포기한 것을 보면 남한은 역사적 운명에 감사해야 한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그러나 이질성과 격차가 아닌, 공통의 눈으로 보면, 최근 일어나고 있는 남북한의 일련의 사회 움직임은 겉으로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여전히 닮은 ‘한국은 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남북한의 모습이 다르기만 할까. 세계사에서 그 유례가 없는 전체주의왕조인 북한, 저마다 작은 집단에서 보스노릇을 하겠다고 날뛰는 한국의 분열패권주의! 우선 사회전반적인 이미지가 사제왕(priest-kingdom)이 통치하던 국가단계의 모습을 보인다. 국가규모는 커졌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운영체계는 저마다 작은 집단으로 갈라져 ‘저마다 보스노릇을 하려는’ 무당의 모습이다. 마치 사이비종교사회의 모습과 같다. 또 사회의 이면에는 폭력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모습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역시 타락한 샤머니즘에서 찾아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일본과 한국은 매우 대조가 된다. 일본의 신도이즘은 실은 고대 동아시아 사회의 공통된 문화적 심층구조였던 샤머니즘의 일본적 변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의 신도이즘은 시대마다 적응·개선돼 현재 세련된 모습으로 일본문화의 초석이 돼 일본의 정체성과 혼을 부르고 있다. 물론 일본의 신도이즘은 최근세사에서는 군국주의가 돼 대동아공영권으로 드러나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게 패함으로써 수포로 돌아갔지만 패망 후 다시 일본을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 많은 식자들은 일본의 오랜 경기침체와 핵발전소 방사능 유출사고 등으로 일본의 미래를 어둡게 점치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은 종합적인 문화능력으로 보면 세계 제2위이다.

일본이 아시아의 후진성을 벗어났다는 의미로 탈아(脫亞)라고 외치며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 때 한국과 일본의 근대적 발전의 차이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50∼100년의 차이가 났다고 한다. 한국은 해방 후 그 격차를 좁히기 시작해 현재는 거의 따라잡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실정을 모르는 소리이다.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해마다, 그것도 과학부문에서 배출하는 것을 보면 일본의 국력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샤머니즘의 역사적 전개에 따르는 차이점은 일본의 경우 신도이즘을 중심으로 다른 불교나 기독교를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주체성을 견지한 반면, 한국은 외래종교에 주인 자리를 내주고 자신의 샤머니즘을 타락한 형태로 버려두거나 외면했다는 사실이다. 샤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신도이즘은 천황제와 연결돼 군국주의(전체주의)로 변질됐다고 하지만 일본의 굳건한 정신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반면 한국은 민간에서 겨우 전승돼 불교와 기독교 속에서 기복신앙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불교가 들어오면 한국의 불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한국이 됐고, 주자학이 들어오면 한국의 주자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자학의 한국이 됐고,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의 기독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한국이 됐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한국이 됐다. 한국에서는 국가는 없어지고, 이데올로기만 남았다.

일본에서는 국가만 남고, 한국에서는 외래 사상만 남았다. 국가만 남은 일본이 문화를 잘 운영했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을 통해서 우리문화의 약점이 무엇인가를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언제부턴가 국가의식이 약화되고 세계화·보편화의 이름으로 국가를 지우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이러한 자기부정의 문화운영이 섣부른 체제부정으로, 자기모순에 빠지게 하고, 오늘의 혼란을 자초했다고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느 나라 문화이든 민족의 기질과 시대 운에 따라 흥성할 때가 있고, 반대로 쇠잔할 때가 있다. 일본문화는 잘못되면, 국가마피아가 되기 쉽지만, 한국은 집단이기의 마피아로 인해 국가상실의 위험에 직면하기 쉽다. 오늘날 한국의 총체적인 문화이미지는 마치 무당 촌을 들어갈 때 느끼는, 울긋불긋한 깃발로 어수선한 모습이다. 오늘날 남북한의 모습을 두고 자본주의마피아, 사회주의마피아로 부른다면 지나친 것일까.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을 보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다. 한국사회를 고쳐야 한다고 떠드는 식자나 지도층 인사의 면면을 보면 겉으로는 선비인 체, 신사인 체하지만 뒤에서는 권력과 돈에 앞장섰던 인물이 많다. 한국은 지금 심각한 ‘위선사회’이다. 정작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을 희생하고 사회와 국가를 구할 한 명의 인물도 없을지도 모른다. 단 한 명의 의인이 없어서 구원을 받지 못할 사회인지도 모른다.

모두 사회와 국가를 구해야 한다고 소리만 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처한 곳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인물은 드물다. 실천하는 인물은 소리 없이 실천하는 인물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크게 나무라는 사람일수록 크게 잘못된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자기모순과 절망이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지도층은 모두 크고 작은 형태, 예컨대 법조마피아, 교회마피아, 사찰마피아, 학원마피아, 관료마피아, 언론마피아 등에 관련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저마다 자신의 마피아를 보지 못하고 남의 마피아만 보고 손가락질 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산업기술문명의 발달에 정신문명이 따라가지 못한 심각한 문화지체현상에 빠져 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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