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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부동산 공화국…세대갈등에 경제 발목

입력 : 2015-01-27 06:00:00 수정 : 2015-01-27 14: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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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식'이 깨졌다] 집으로 돈 버는 시대 지났다
자산 78%가 부동산 편중 … 격차 키우고 후손엔 부담
한국은 심각한 ‘부동산 중심사회’다. 모든 경제주체의 순자산 총합인 국민순자산, 국부(國富)의 대부분이 부동산이다. 산업화 시대부터 욕망을 품은 투기 열풍에 땅값, 집값이 무섭게 치솟은 결과다. 부자일수록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는 이유다. 땅과 집은 그렇게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빈부격차, 세대격차를 벌리며 우리 사회를 갈랐다. 부자도 많이 만들었지만 가난한 이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 아버지 세대에게 재산증식의 기쁨을 줬지만 자녀 세대에겐 집 살 꿈조차 접어야 하는 좌절감을 안겼다.

땅값, 집값이 영원히 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인구가 계속 늘고 경제성장이 지속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인구는 감소 추세이고 성장 잠재력은 갈수록 떨어지는 흐름이다. 더욱이 집값은 소득 수준에 비해 너무 높게 형성돼 있다. 그 간극을 가계부채가 메워 집값을 떠받치고 있는, 위험한 구조다. 이 때문에 집값은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진단과 전망이 잇따른다.

“빚 내서 집 사라”는 최경환노믹스 경기부양책에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26일 “집값 붕괴는 기정사실이다. 집값 부양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번지수가 잘못된 정책으로 가계부채만 늘렸다”고 혹평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인위적 집값 부양에 대해 “후손들의 소득을 빼앗아오는 짓이며 국가 불행을 키우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연장선상에서 이제 부동산 중심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반성과 제언도 잇따른다. 부동산에 투자해 불로소득으로 부자가 되는 사회는 비효율과 불평등만 심화시킬 뿐 국민의 보편적 삶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위적 집값 부양으로 위험을 키울 게 아니라 서서히 떨어지며 연착륙하도록 해야 하는 등 부동산정책의 전면적인 전환 필요성도 제기된다. 정 소장은 “집은 돈을 벌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편하게 사는 공간”이라며 “집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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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중심사회의 명암

국민순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압도적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이 지난해 말 발표한 ‘우리나라의 자본스톡 확정 추계(1970∼2012년)’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산에서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비금융자산 비중은 78%에 달한다. 미국 35.3%, 일본 46.5%에 비해 월등히 높다. 국민순자산 중 토지자산 규모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4.1배로 일본(2.4배)보다 훨씬 높다. 과거 일본은 이 비율이 한국보다 높았지만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낮아졌다고 한다. 조태형 한국은행 국민B/S팀장은 “일본은 1991년부터 부동산이 꺾이면서 이 수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부자들의 재산은 거의 부동산으로 구성돼 있다. 통계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의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결과’에 따르면 순자산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평균 순자산액은 9억8223만원인데 이 중 72.3%인 7억1023만원이 부동산이었다. 이에 비해 소득 하위 20%인 1분위는 순자산액 2845만원 중 부동산이 31.6%인 900만원에 불과했다.

‘부동산 중심사회’는 수십 년에 걸쳐 뿌리를 깊이 내렸다. 1970년대 서울 강남 개발로 본격화한 부동산 열풍이 외환위기 직후 등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지속된 결과다. 정 소장의 조사에 따르면 1966년 영동개발 계획 발표 당시 평당 200∼300원 정도이던 서울 말죽거리(양재역 일대) 땅값은 1969년 제3한강교와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 등이 발표되면서 5000∼6000원으로 뛰었다. 지금은 평당 5000만원을 넘는 곳도 많으니 50년간 20만 배 이상 뛴 것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한때 경제성장, 국민소득 증대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한국경제에 끼친 해악이 훨씬 크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의 실종, 산업경쟁력 약화, 가계부채 증가, 소비부진, 결혼 불능, 출산율 저하, 양극화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모두 부동산 중심사회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가히 만악의 근원”이라고 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부동산 중심사회는 불평등과 세대 간 갈등을 키우는 만큼 경제적 측면에서도, 또 사회 안정성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집에 대한 생각과 정책 바꿀 때”


“빚 내서 집사라”는 정부 정책은 ‘폭탄 돌리기’에 비유된다. 정부는 매매를 늘려 경기를 부양하려는 목적이지만 집을 매수하는 이들은 폭탄을 끌어안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빚을 내 집을 샀다가 집값 하락으로 하우스푸어가 될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집값 상승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인식은 이미 보편화했고, 향후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구구조 변화로만 봐도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1년에 평균 80만명이 태어났지만 지금 유아기 세대는 40만명대로 반 토막이 났다. 부동산 수요는 줄고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합리적 기대가 형성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불패신화는 이미 깨져 장기적으로 돈 흐름은 대체자산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지금 빚을 내 집을 사라고 하는 건 거의 사기”라고 했다.

장 실장은 “요즘 30대들은 주택구입이 아예 능력 밖의 일이 되어 집 살 생각을 포기하더라”며 “이제 주택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집을 보유하게 하는 정책보다 소유하지 않고도 주거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이제 정부가 할 일은 집값 하락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서서히 떨어뜨리는 것, 즉 전쟁 중 희생자를 최소화하면서 질서정연한 후퇴를 해야 할 때인데 아직도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집에 대한 생각을 이제 바꿔야 하는데 제일 못 바꾸는 게 정부 정책담당자들로, 이명박정부 때부터의 풍월을 계속 읊고 있다”는 것이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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