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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돌 7초 만에 침몰… 객실안 관광객들 피할 틈도 없었다 [헝가리 유람선 참사]

입력 : 2019-05-30 22:25:20 수정 : 2019-05-30 23: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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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왜 커졌나 / 강풍·폭우에도 무리하게 운항 / “탑승 전 구명조끼 착용 못들어” / 일몰 이후 사고 가시거리 좁아 / 실종자 수색·구조작업 등 난항 / 현지 전문가 “이번 사고는 인재” / 사고 당시 상황 / 관광객들 “설마 했는데 그대로 추돌 / 순식간에 옆으로 넘어가면서 뒤집혀” / 현지 경찰, 선박 억류… 사고 경위 조사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29일(현지시간)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이 한국인 33명 등 35명이 탑승한 유람선(원 안)을 추돌하고 있다. 사고 직후 현지 경찰은 사고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부다페스트=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유람선 침몰 사고는 강한 바람과 호우를 동반한 악천후가 겹치면서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이날 밤이 되면서 비가 내리고 강한 바람이 부는 등 기상이 악화됐지만, 현지 업체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유람선을 운항했다.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했는데 무리를 저질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구명조끼 착용 등 안전조치 미흡

이날 침몰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는 현지 여행 경험을 지닌 네티즌들의 주장이 이어졌다. 일례로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은 4년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가족들과 함께 유람선을 탔던 당시 경험을 털어놓았다.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때 탔던 배도 사고가 난 유람선과 비슷한 크기였는데, 구명조끼 없이 유람선을 탔다”며 “헝가리의 법과 제도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의무적으로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는 안내가 없었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다른 배에 타고 있었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린 한국인 관광객도 “안전불감증인지 승객들 구명조끼도 안 씌워줬다”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침몰 사고를 목격한 부다페스트 시민들의 진술을 인용, “유람선 탑승자들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브리핑에서 ‘관광객들의 구명조끼 착용 여부’를 묻는 말에 “현지 공관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착용은 안 했다고 한다”며 “아마 그쪽 관행이 이런 것으로 알고 있으며, 사고 조사 과정에서 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0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 정박한 바이킹 크루즈. AP연합뉴스

◆빠른 유속에 악천후… ‘무리한 운항’ 비판

대형 크루즈의 갑작스러운 추돌로 작은 유람선이었던 ‘허블레아니’ 선장이 미처 손을 쓰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침몰 유람선이 사고 발생 이후 7초 만에 가라앉았다는 게 아드리안 팔 헝가리 경찰국장의 설명이다.

많은 비가 내리면서 다뉴브강의 빨라진 유속도 사고 위험을 높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뉴브강은 한강보다 폭이 좁고 다리를 비롯한 장애물이 많다. 강풍이나 호우 등 기상 상황이 좋지 않으면 유속이 빨라지면서 강 곳곳에 소용돌이가 형성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다뉴브강에서는 5~10분 간격으로 수많은 선박이 오가며 대열을 맞춰 운항한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은 때에는 급류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한 선박이 항로를 이탈하면서 다른 선박과 갑작스럽게 부딪쳐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30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조사를 위해 경찰들이 바이킹 크루즈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특히 해가 저문 이후에는 가시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사고에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어두운 밤에 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서 승객들 상당수는 비를 피해 객실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다. 급류에 휩쓸리는 것처럼 유람선이 빠르게 침몰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감안하면, 객실에 있던 승객들은 사고 당시 신속한 대피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다뉴브강의 유속이 빠르다는 점에서 승객들이 사고 지점과 멀리 떨어진 곳까지 떠내려갈 수도 있다. 사고 당시 다른 유람선에 타고 있었다는 한국인 관광객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비가 많이 오는 데다 유속도 빨라 인명 피해가 클 것 같다’고 우리 인솔자가 우려했다”고 밝혔다.

실종자 구조에 나선 현지 구조대도 궂은 날씨와 다뉴브강의 빠른 유속 등으로 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 '허블레아니'와 부딪힌 대형 유람선 '바이킹 사이진'의 선체 아랫 부분에 30일(현지시간) 파손 흔적이 선명하다. AP연합뉴스

◆승객들 탈출 못한 이유는… 현지 전문가 “이번 사고는 인재”

객실에 머물고 있던 관광객들은 사고 직후 탈출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 수난구조 전문가는 “이번 사고 상황을 볼 때 큰 크루즈 선박이 작은 유람선 선박을 들이받자마자 곧바로 유람선이 뒤집어져 가라앉았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내부에 있던 관광객들은 빠져나오기 어려웠을 것이고, 실종자의 상당수는 사고 선박 안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순식간에 벌어졌기 때문에 ‘에어포켓’이 있을 가능성도 낮고 있다 하더라도, 유속이나 수온 등을 감안하면 오랜 시간을 버티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조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바다보다 강에서 발생한 사고에서 인명 구조가 훨씬 어려운 걸로 여겨진다”며 “유속이 빠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지에서는 이번 사고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레 호르베트 헝가리 항해협회 사무총장은 30일 M1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람선과 충돌한 대형 크루즈선이 다른 배와의 거리를 4m로 유지하도록 배의 위치와 움직임을 조정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30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조사를 위해 경찰들이 바이킹 크루즈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람선 ‘허블레아니(Hableany)’의 침몰 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이날 헝가리의 한 기상서비스 웹사이트가 공개한 기상관측용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면 대형 크루즈선이 머르기트 다리의 교각 쪽으로 향하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모습이 나온다.

 

이때 다리 아래에서 크루즈가 방향을 튼 직후 정박 직전이던 유람선을 들이받는 듯한 장면도 나오는데, 이 작은 유람선이 한국인 33명 등 35명이 타고 있던 허블레아니로 추정된다. 이 크루즈선은 ‘바이킹 시긴’호로 길이 135m, 폭 12m의 대형 선박이다.

시긴호는 95개의 객실과 식당, 라운지, 발코니 등을 갖추고 95∼190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규모로 알려졌다. 허블레아니(길이 27m, 폭 4.8m)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다른 각도에서 찍힌 CCTV를 보면 허블레아니 뒤로 바이킹 시긴이 빠르게 다가온다. 다리 근처에서 두 배가 스치듯이 붙어 추돌한 뒤 허블레아니가 옆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바이킹 시긴의 우측 뱃머리가 유람선 좌측 뒷부분을 추돌하면서 그 충격으로 허블레아니가 순식간에 뒤집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이킹 시긴의 우측 뱃머리 부분에는 사고 충격으로 긁힌 자국이 사진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허블레아니는 사고 당시 야경 투어를 거의 마치고 강의 중간쯤에서 거의 서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바이킹 시긴은 허블레아니에 살짝 부딪힌 후 다시 강하게 추돌했다고 한다. 2차례 추돌이 일어난 것이다.

 

구조된 한국인 관광객의 통역을 돕고 있는 현지 교민은 “구조된 사람 중 한 분은 ‘큰 유람선이 오는데 설마 우리를 (들이)받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유람선을 들이받아 전복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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