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권력 손보라는 교훈 버리고
진영 정치 불쏘시개로 허비한 탓
책임은커녕 보복 정치 하겠다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변방의 정치인’에서 중앙 정치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 컸다. 처음으로 탄핵을 주장하면서 지지율이 두 자릿수로 뛰더니 유력 야권 대선 주자가 됐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탄핵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을 맡아 ‘촛불정부의 상징’이 됐다.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었고 검찰개혁을 진두지휘했다.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은 인사 검증 부실 논란은 물론 조국 사태 때도 그를 엄호하느라 바빴다.
4·10 총선을 앞두고 두 사람이 다시 탄핵을 입에 올렸다. ‘3년은 너무 길다’는 구호로 당을 만든 조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데드덕’(dead duck)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며 개헌을 통해 윤 대통령 임기 단축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유세에서 “주인을 물려고 대드는 그런 일꾼·머슴·종을 이제는 해고해야 한다”며 “서슬 퍼런 박근혜 정권도 우리가 힘을 모아서 권좌에서 내쫓지 않았나”라고 했다.
정정 불안, 국가 위상 추락을 몰고 올 탄핵을 쉽게 거론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대표적인 탄핵 수혜자인 두 사람이 할 말은 더욱 아니다. 2017년 탄핵의 교훈은 대통령이, 청와대가 제왕적 권력을 누려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탄핵 시위에서 가장 많이 불린 구호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였다. 문재인 청와대는 자신의 권력을 내놓는 대신 ‘촛불정신’을 적폐청산, 검찰개혁으로 포장해 사실상 정치 보복을 정당화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은 인력과 예산을 쓴 청와대 입김은 더 셌다. 그 흔적이 여러 수사, 재판에서 드러난다. 김수현·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홍장표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등은 집값 안정, 소득주도성장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를 조작한 혐의로 줄줄이 기소됐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사건 공소장에는 대통령, 청와대가 수십번 등장했다.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의원,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선 최근 청와대 ‘윗선’ 수사가 재개됐다.
진보 진영에서조차 탄핵에 가세했던 범보수 세력을 포함해 ‘개혁 연대’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문재인 청와대는 지독한 편가르기로 일관했다. 2017년 탄핵을 자신들의 성취로 독점한 것이다. 조국 일가 입시 비리에서 비롯된 조국 사태는 상대 진영을 궤멸할 적으로 삼는 혐오·적대 정치를 증폭시킨 뇌관이었다.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대사변을 겪고도 우리 정치가 이처럼 퇴행한 건 문재인 청와대 책임이 크다.
조 대표는 2017년 탄핵을 자기 진영의 불쏘시개로 허비한 당사자다. 그런 그가 다시 탄핵의 주체가 되겠다는 초현실극을 벌이고 있다.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자신을 비롯해 실형 선고를 받거나 검찰 징계를 받은 이들을 모아 윤 대통령을 무너뜨리겠다고 노골적인 정치 보복을 선언했다. 겉으로는 조국당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이 대표 속내도 다르지 않다.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승하면 ‘헌정 중단’ 사태가 올 수 있다고 말하는 측근이 적잖다. 탄핵 시위를 주도했던 민노총, 좌파 시민단체 인사들이 공천장을 받고 위헌 정당인 통진당 후신 세력과 손잡은 걸 보면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권력 분립·견제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미국에서도 국회 의사당이 폭도들에 의해 점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세력이 벌인 일이다. 의사당 내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고 정부 셧다운 위기를 맞고 정당 리더가 쫓겨났다. ‘풀뿌리 운동’으로 시작된 티파티를 정치 자산으로 삼는 극우파 의원 조직이 주도한 일이다. 이들은 숫자는 적지만 강력한 팬덤을 무기로 정치판을 흔들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4·10 총선 이후 우리가 걱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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