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한 데 따른 연구 협력 제한 조치가 15일(현지시간)부터 공식 발효된다. 우리 정부가 그간 지정 해제를 위해 미측과 고위급 및 실무 채널을 통해 협의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간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가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된 지 두 달여가 지나도록 이런 사실을 몰랐다가 늑장 대응한 탓이 크다고 하겠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미측 기류를 감지해 신속 대응에 나서야 할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정보원이 누가 주무 부처인지 놓고 책임을 떠넘기느라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부처 간 조정에 나서야 하는 국가안보실도 역할을 다했는지 묻고 싶다. 책임이 있다는 국가기관이 한 곳도 없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조기 대선판에 묻혀 유야무야 넘어갈 공산이 큰 만큼 재발 우려도 여전한 게 현실이다.
미 에너지부 규정을 보면 민감국가의 국민이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를 방문하려면 최소 45일 전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사전 신원조회를 거쳐 승인받게 돼 있다. 에너지부 직원이나 소속 연구자가 한국을 찾거나 접촉할 때도 추가 보안절차가 적용된다. 우리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이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에서 비롯됐다며 미측이 향후 교류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전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조변석개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한·미 양국은 에너지 연구와 관련해 원자력발전, 소형모듈원자로(SMR), 전력설비, 인공지능(AI) 등에서 협력 중이다. 우리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 발효로 향후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미측과 긴밀히 협력하는 한편 조속한 해제를 위한 외교적 노력도 최대한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측으로부터 민감국가 해제 일정과 관련한 확답을 받기 전까지 에너지 연구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다고 장담할 순 없다. 미국이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과학기술 분야 민감정보를 다루는 데 한국의 보안 수준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만큼 국제협력 관리체계 전반을 점검할 필요성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대통령령에 국제 공동연구 시 타국으로의 기술유출 방지뿐 아니라 한국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보안조치 규정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대응방안 마련에 참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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