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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학생 4명 자살 KAIST '춘래불사춘'

입력 : 2011-04-09 13:58:38 수정 : 2011-04-09 13: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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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엔 총장-학생 간담회..오전엔 보직교수 회의
학교측, 휴학생 안부확인-우울증 학생 파악 분주
11∼12일 휴강 후 사제간 대화..12일 2차 간담회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이 올해들어서만 네번째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음날인 8일 오후 7시께 KAIST 창의관 터만홀에 4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전부터 예정돼 있던 서남표 총장과 학생간 간담회에 참석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는 학생들이었다.

총학생회측이 전날의 비보를 감안해 연기를 건의했으나 구성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을 찾자는 차원에서 예정대로 간담회를 진행키로 결정됐다.

간담회를 주최한 총학생회 간부들과 간담회에 동참한 교수들의 왼쪽 가슴에는 '근조(謹弔)' 리본이 달려 있었으며 서 총장에 앞서 간담회장에 나온 이승섭 학생처장은 학생들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묵념도 했다.

묵념 후 이 처장은 "우리가 나눈 얘기가 외부에 왜곡돼 전달될 우려가 있는 만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고 이에 학생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언론이 있고 없고가 왜 중요하냐", "이 상황에서 총장의 이미지가 중요하냐"며 반발하기도 했지만 "구성원들끼리 허심탄회하게 얘기하자"는 서 총장의 의견에 따라 간담회는 예정보다 1시간 30분 가량 늦게 비공개로 시작됐다.

서 총장도 간담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학생들과 함께 묵념했다.

한 학생은 '서남표 총장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사과와 서남표식 개혁의 폐기입니다' 등의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간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학생들은 '징벌적 수업료' 폐지방침을 재확인받은 뒤 그동안의 정책을 재검토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고 이에 서 총장은 시대가 계속 변하는 만큼 지금의 정책이 영구히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다양한 의견을 들어 수정할 것은 개선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학업부담이 너무 강하다는 학생들의 의견에 서 총장은 본인의 MIT 재학시절 '소방호스를 입에 물리고 물을 쏟아붓는 것처럼 공부해야 할 양이 많았다'는 경험을 예로 들면서도 필요하다면 조정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4학년 여학생은 간담회가 끝난 뒤 "정책결정협의체에 학생들도 참여시켜 달라고 요구했는데 서 총장은 결정권이 이사회에 있는 만큼 이사회에 물어보겠다고 대답했다"며 "그나마 간담회에서 많은 의견이 나왔고 협의체에 참여시켜 달라는 요구사항까지 서 총장이 수렴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간담회 도중 한 학생이 참석자들에게 수업료 폐지에 찬성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묻자 90% 가량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면서도 "다시 수업료 문제가 학생 자살의 원인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즉 수업료 문제가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학생은 "서 총장이 미국 역사와 과학사, 개인의 경험 등을 얘기하면서 답변을 빙빙 돌린다는 느낌이 들었고 명확한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며 "임시방편으로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식으로 간담회가 이뤄졌다"고 평했다.

간담회는 예정됐던 오후 11시를 45분 가량 넘겨 끝났으며 총학생회는 오는 10일 이날 간담회에서 오간 대화 등에 대한 전체적인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다.

서 총장과 총학생회는 12일 오후 간담회를 다시 갖기로 했다.

간담회 공개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느라 1시간 이상 늦게 시작된 것처럼 이날 하루종일 KAIST 캠퍼스는 어수선하고 침울했다.

오전부터 2시간 동안 보직교수 회의가 열려 더이상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됐으며 학교측은 올해 자살한 4명의 학생 가운데 3명이 휴학한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점을 감안, 동료학생을 통해 휴학생들의 안부를 전화로 확인하기도 했다.

또 우울증을 앓는 학생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도 열을 올렸다.

박희경 기획처장은 "1월에 자살한 학생이 주목받으면서 우울증 등 증세를 보이던 학생들이 해서는 안될 선택을 하는 것 같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있었다"며 "더 이상의 비보가 없도록 강구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마련해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담회에 앞서 일부 취재진이 오전부터 총학생회 사무실을 찾아가 '서 총장의 사과 및 징벌적수업료 제도를 재검토하겠다는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지만 총학생회측은 "모든 언론에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며 "오늘 저녁에 열리는 간담회 결과를 토대로해서 조만간 공식 논평을 내놓을 예정"이라는 설명만 할 뿐이었다.

곽영출 학생회장도 휴대전화를 꺼 놓고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거절한 채 서 총장과의 간담회에 발표할 자료를 정리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동료 학우가 자살하게 된 원인을 바라보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면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영어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린 한 참여자는 "입학하는 순간부터 영어강의로 4년을 살았는데, 수업을 제대로 들었던 강의가 없었다"며 "많은 친구가 수업 때 '멍' 때리다가 혼자서 공부하고 힘들어한다"고 주장했다.

'KAIST 영어수업에 대하여'라는 글을 올린 참여자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KAIST의 큰 문제들 중 하나를 '영어수업'이라고 계속 나오는데, 솔직히 영어수업은 주요 문제 중 하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른 참여자는 "이번 학생의 경우는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등록금과 관계가 없다. 그렇기에 등록금 정책도 문제가 있지만 제가 볼 때 더욱 문제 있는 건 카이스트 내 문화라고 생각한다"며 "사실 명문대인 만큼 학업에 대한 부담감이 당연히 클 수밖에 없고, 그걸 문제점으로 볼 수도 없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입학했다고 소개한 한 학생은 ▲차등등록금을 적용하되 수준을 조절 ▲재수강 학점 제한을 유지하되(B+), 재수강 개수제한 폐지 ▲엄격한 부.복수 전공 신청 및 유예기간 제공 ▲전과목 영어강의 폐지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따스한 봄햇살이 KAIST 캠퍼스를 비췄지만 구성원들의 얼굴에서는 좀처럼 봄기운을 찾아보기 힘든 하루였다.

한편 학교측은 최근의 침울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또 11일과 12일에는 강의를 하지 않은 채 학과별로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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