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추진 사업과 중복… 유권자 감시 필요 4·11 총선을 앞둔 여야 정당이 본격적인 ‘공약 경쟁’에 나서면서 ‘재탕’, ‘삼탕’ 공약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지난 18대 총선에서 다른 정당이 내놓았던 공약을 채택한 ‘표절’ 사례도 눈에 띄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총선 복지공약의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새누리당은 ‘만 0∼5세 전 계층 양육수당 지원’을 약속했다. 18대 총선과 2010년 6·2 지방선거 때도 비슷한 공약이 있었다. 소득 상위 30% 계층을 배제하기로 했던 지방선거 공약이 전 계층으로 확대된 것 외에는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렵다.
새누리당이 고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은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 대상자 확대는 18대 공약을 각색한 것이다. 비대상인 ‘경증 치매’ 노인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식으로 기존 공약을 보완했다.
민주통합당은 기존에 추진하던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실시, ‘반값 등록금’ 실현 공약을 다듬어 다시 내놓았다. 재원조달 방안과 수치만 일부 수정됐을 뿐 18대 총선이나 6·2 지방선거 때 제시했던 ‘보편적 복지’의 기조는 변함이 없다. 매년 선거철이면 나오는 ‘단골 공약’ 중 하나인 저소득층 대상 ‘주택 바우처’ 지원 공약도 어김없이 재등장했다. 전월세 상한제는 임대차 기간(2년)을 기준으로 5% 초과 인상을 금지했던 지방선거 공약을 ‘연간 5%’로 바꾼 것이다.
18대 총선 때 다른 정당이 제시한 공약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차용한 공약도 있다. 새누리당이 내세운 ‘노인 틀니 건강보험 지원’ 공약은 자유선진당, 민주당이 검토 중인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민주노동당이 18대 총선에 먼저 사용했던 공약이다.
시·도당 차원의 지역별 공약도 성의 없기는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전북도당이 내세운 ‘새만금 신항만 물류·산업복합단지 조성’ 공약은 정부가 추진 중인 사업과 중복된다. 정부는 지난 16일 새만금위원회 6차회의에서 ‘새만금 종합개발계획’을 확정했고 그 안에는 세계 최대 규모 신재생에너지 단지를 포함해 각종 물류, 산업단지 추진계획이 모두 들어 있다. 부산에 금융중심지를 육성하겠다는 민주당의 약속도 전형적인 ‘뒷북 공약’이다. 이미 ‘부산 금융중심지법’ 개정안이 지난 20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홍승표 기획팀장은 “국회의원 1명의 힘으로 불가능한 국가 차원의 공약이나 지자체 중복 사업을 추진하려면, 의원과 단체 간 역할이 불분명해질 수 있다”며 “이런 공약에 대한 엄격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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