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창단 20주년을 맞이한 연희단거리패는 한국브레히트학회(회장 이원양)와 공동으로 ‘억척어멈…’을 선보인다. 한국 향토색이 짙은 번안극이다. 원작은 17세기 30년전쟁(1618∼1648)을 시대배경으로 달구지를 끌고 다니며 병사들에게 생필품을 파는 억척어멈이 자식을 잃어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 딸의 장례조차 남의 손에 맡기고 돈벌이를 좇아 황망히 군대를 뒤따르는 억척어멈의 모습이 비애를 자아낸다.
이윤택 연출가는 아비 부재의 한국 근대사에서 가정을 지킨 한국 어머니상을 ‘억척어멈’에 투영한다. “브레히트의 텍스트를 한국의 역사, 정서, 풍속으로 녹여낼 것”이라는 장담이다.
이번 무대의 배경은 6·25전쟁 당시 남원과 구례 하동 마을이다. 브레히트가 극중 사용했던 대중음악과 군가풍의 노래는 50년대 한국 대중음악과 군가로 바뀐다. 억척어멈은 연희단거리패 배우 김미숙. ‘오구’에서 이윤택과 호흡을 맞춰온 최우정 서울대 음대교수가 음악감독, 국립창극단원 박성환이 방언과 판소리 구성을 담당했다.
공연에 이어 한국브레히트학회 주최로 ‘브레히트 서거 50주기 기념 심포지엄’(11월3, 4일)과 자료전(11월3∼11일)이 성균관대 성균갤러리에서 열린다.
◆고연옥 윤색·김광보 연출의 ‘억척어멈’=연극 ‘인류 최초의 키스’ 등에서 인간에 대한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져왔던 고연옥 작가와 김광보 연출가 콤비답게 억척어멈에 대한 해석이 도전적이다. 통상적인 번역극과는 다소 색깔을 달리해 인간의 탈바꿈에 주안점을 맞춰 21세기 관객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점이 주목된다.
억척어멈은 자식을 위한 희생으로 질곡의 세월을 건너가는 엄마가 아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불특정 시공간 속에서 생존을 위해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변모해 가는 한 인간이다. 김광보 연출가는 “독일 초연 시 브레히트의 아내이자 배우인 헬레네 바이겔이 억척어멈 역을 맡는 것을 주변사람들이 만류했을 만큼 억척어멈은 인간의 이기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면서 “‘삶’이라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에 눈멀어가는 억척어멈의 모습이야말로 동시대 관객과 만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객석과 무대를 허무는 파격적인 무대장치로 이른바 소격효과가 추구되는 점이 흥미롭다. 관객은 무대 위에 올라 관람하고 배우는 그 틈바구니에서 연기한다. 경계가 없는 셈이다. 서강대 메리홀 객석은 아예 폐기된 채 무대 위에 객석이 깔린다. 김광보 연출작에서 여주인공으로 활약해온 문경희가 이번에도 주인공을 맡았다. 서울공연예술제 공식초청작.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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