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 한국에도 둔황(敦煌) 유물이 있네.” 중국인들에게서 놀라움과 의구심의 작은 탄성이 흘러나온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된 간쑤(甘肅)성 둔황의 막고굴(莫高窟)을 돌아본 뒤 이곳에서 반출된 유물의 소장국 이름을 써놓은 안내문을 읽고 나서다. 막고굴은 북조(北朝) 시기부터 원나라에 걸쳐 만든 동굴 735개에 합계 면적 4만5000㎡의 벽화, 불상 2415좌 등이 있는 거대한 불교 유적이다. 제국주의 시절이던 1900년부터 이곳 동굴 중 ‘불경을 보관하는 동굴’이라는 뜻의 장경동(藏經洞)에서는 각종 불교 문서, 자료, 유물 약 5만점이 발견됐다. 신라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서 나왔다. 이 유물들은 이른바 ‘탐험대’라 자칭한 외국인들에 의해 해외로 반출되는 운명을 맞는다. 약탈·도난 문화재인 셈이다. 바로 이 둔황 유물 소장국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과 함께 한국의 이름이 올라 있다.
사연은 이렇다. 서양처럼 탐험대를 조직한 일본 승려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도 둔황에서 유물 5000여점을 빼돌렸다. ‘오타니 컬렉션’이다. 이 중 3분의 1인 1500여점을 매입한 광산 재벌은 이를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에게 바쳤다. 이 유물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있다가 1945년 해방 후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에 남게 됐다. 우리가 국외 반출 한국 문화재의 환수를 추진하면서도, 오타니 컬렉션의 운명은 항상 숙제로 남아 있는 이유다.
647년 만에 절도범의 손에 의해 고국에 돌아왔던 충남 서산 부석사의 고려 불상은 법원 판결에 따라 다시 일본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약탈범, 절도범, 다시 법률에 의해 운명이 뒤바뀐 불상은 말이 없다.
그제 조선 시대 형법의 근간이 되는 중요자료 ‘대명률(大明律)’이 2016년 보물 지정 9년 만에 자격을 잃게 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도난품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립 박물관장이 2012년 장물업자에게서 사들인 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이라며 입수 경위를 속여 보물로 지정받았다고 한다. 국보, 보물과 같은 문화유산의 지정을 취소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람의 운명만이 기구한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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