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자기 경험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자설自說이고, 반대로 타의 선험에 의지하여 표현이 추상적이고 관습적인 테두리에 머무르게 되면 타설他說이다.”
박철희 서강대 명예교수는 1980년대 초 ‘자설’과 ‘타설’이라는 학설을 만들어, 한국 시가의 전개과정을 자설적 구조와 타설적 구조의 순환논리로 규정하였다. 사설시조를 자설적 구조로 파악하여, 형식면에서는 평시조의 형식을 이어받고 있으면서도 그 장르 나름의 자설미를 발견하고 개성적인 리듬을 획득한 끝에, 자유시의 내적 배경을 마련하는 정형을 이룩한 것이라고 했다.
1980년 출간된 ‘한국시사연구’(일조각)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박 명예교수는 근대 이전과 이후의 시를 그 자체 내에서 함께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마련하기 위해 시조, 사설시조, 개화기 시가, 근대시(시조)를 일관하는 동시적 질서를 파악하면서, 아울러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구조의 대립적인 변화로 한국시의 큰 흐름에 접근한다.
고전과 현대를 일관된 담론으로 기술하는 뜻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향가에서 근대시에 이르기까지, 한국시가의 기저에 존재하는 일반 원리로서 시조를 부각시킨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한국시사연구’가 시사의 방법론적 모험이라면, 이번에 나온 ‘한국 근대시사 연구’는 그 적용 가능성이 된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한국 근대시를 대상으로 한국시에 작용하는 전체적 질서와 그 변이 과정을 시학詩學 및 사적史的인 관점에서 다룬다. 무엇보다 지은이의 관심은 공시론적이면서 통시론적인 시각이다. 텍스트를 산출하는 메타언어와 메타텍스트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조건 지어져 있는 사회 역사적 맥락을 유념하였다. 시에 대한 공시적인 구조의 탐색은 통시적 맥락에서 한국시를 읽어내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텍스트의 구체적인 해석과 맞물려 있다. 시인들의 독자성을 존중하면서 텍스트 자체와 텍스트 밖의 시와 시인에 대한 담론을 주목한 것은 이 때문이다. 역사의 텍스트성과 텍스트의 역사성을 함께 읽는 일과, 그러한 읽기의 방법론의 모색이 이 책의 의도다.
그렇게 함으로써 좁게는 한 시인의 ‘개인적 시사’를, 넓게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19세기 이후 오늘에 이르는 한국시의 ‘작품사’가 아닌 ‘포에지의 역사’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한국시가의 유기적 흐름이 자설적인 것과 타설적인 것의 내적 대립의 연속성이라고 할 때, 한국 근대시의 흐름 또한 한쪽이 주류화되면 정전이 되고 다른 한쪽이 주변화되는 과정을, 적어도 양자의 역동적인 교호를 거듭하면서 전개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근대시의 경우, 무엇보다 서구시의 영향이 각별하였다. 서구시의 경험이 한국 근대시를 형성한 요인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외부적인 자극일 뿐 한국시 자체 내의 전통적인 경험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반전통적이라는 서구적인 충격과 그 반작용인 전통적 경험과의 이러한 모순적 양립을 한국 근대시는 처음부터 그 자체 속에서 경험하고 있었다. 즉, 반전통성과 전통성 사이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긴장을 겪으면서 한국시의 근대성은 움트고 싹터온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문학의 ‘근대성’은 타설적 형식의 쇠퇴와 자설적 형식의 부상이라는 패러다임적 관점에서 가능하다. 근대 이전의 문학, 특히 개화기 시가가 감각보다는 이념을, 개성보다는 관념을 앞세운 타설적 구조 위에서 형성·전개되었다고 한다면, 근대 이후의 시는 반대로 자설적 구조 변화를 일으켰다. 그만큼 이념보다는 감각, 관념보다는 개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아의 발견 및 강조, 과거에의 회귀, 낭만적 정열, 에로스적 충동 등과 같은 도피 모티프 등, 한국시의 근대성을 이루는 서정성이 1920년대 초 시의 특징으로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엘리엇의 말처럼 “문학사는 결정적이거나 변경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의 출현에 따라 끊임없이 재조정되는 것”이며, 랑송도 “한 사람의 인생을 다 바쳐도 완벽한 문학사는 기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 책으로 ‘한국시사연구’와 함께 의도했던 시사詩史의 틀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으며, 마지막으로 이러한 틀에 맞춰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한 권의 시사를 쓰는 일을 이후의 과제로 남겨놓고 있다.
▲내용
1부 ‘한국 근대시사 기술의 경과와 방법’ 중 특히 ‘한국 근대시사의 방법과 인식의 방법’에서는 한국 근대시의 흐름에서 자설적인 것과 타설적인 것, 이 양자는 상호대립적이며 중층적임을 밝힌다. ‘지각의 갱신’만이 아니라 사회 역사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고, 또한 문제는 각 계층이 요구하는 방향이 다르며 그 요구가 어느 쪽이 강하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외면과 내면, 의식과 무의식, 공적 담론과 사적 담론, 중심과 주변, 상징과 상상, 남성과 여성 등 각 계층은 양분적 대립을 갖고, 각 층은 독자성을 지니면서 서로 교호한다.
‘북한 시사, 그 시각과 문제점’에서는 1980년대 이후에 나온 ‘조선문학개관’, ‘조선국어고전시가사 연구’, ‘북한의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 연구’를 중심으로 19세기 이후 시의 형성 및 전개과정 논의를 대상으로 하여, 북한 시사 연구의 현실과 그 수준을 개괄하였다.
2부 ‘한국 근대시의 구조와 상상력’에서는 전환기 시에 주목하였다. 1910년대 시가가 목적시로 대표된다면, 1920년대 초는 낭만시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중반 이후는 프로시가 보여주듯이 현실시다. 현실시에 대한 대립이 1930년대 순수시운동과 모더니즘이다. 1910년대와 1920년대 후반은 현실성이 주축을 이룬다면, 1920년대 초와 1930년대 중반 이후는 낭만성이 축을 이룬다. 그만큼 사회성 못지않게 심미성이 강조되었다.
낭만성과 현실성이라는 두 개의 축을 바탕으로 하여 유기적인 전개과정을 보여준 것이 1920년대 시라면, 1930년대 후반은 역사에서 문학 그 자체로 시각이 바뀐 것이다. 이 점은 한 시인의 시적 편력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임화의 시 편력은 1930년대 후반 시단의 전체적인 움직임과 그 궤를 같이한다. 이른 나이에 카프의 주도적 이론가로서 현실주의 시를 대표했던 그가 1930년대 중반을 고비로 시각을 외부에서 내부로 옮긴 것이 바로 그것이다.
3부 ‘한국 근대시사와 시인’에서는 1930년대 후반 “오늘의 문명이 점점 심각하게 이지러지는” 당시 상황에 대한 정지용, 김기림, 서정주, 유치환, 박두진 등 각 시인들의 서로 다른 반응(창작방법론)도 모두가 한결같이 내면을 노래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러나 유치환과 박두진의 경우는 외면과 내면이 처음부터 동행하고 있었다. 이것은 통시론적이고 역사적인 전개만이 아니라 구조 자체의 공시론적인 관련과도 무관하지 않다. 말하자면 공시론적인 전개에 의한 통시론적인 관련성이다. 시사와 더불어 담론사를 함께 다룬 것은 이 때문이다.
4부 ‘한국시가 연구, 그 성찰과 모색’에서는 한국시가 연구 100년의 성과를 점검·반성하고, 앞으로의 과제와 방향을 가늠하면서 한국시가 연구를 위해 몇 가지 전망을 제시한다.
첫째, 믿을 만한 원본확정과 실증적인 작업이 문제다.
둘째, 한국시가사의 흐름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한국시가의 미개척 분야를 하나하나 불식시켜야 한다.
넷째, 외국의 이론 혁명이나 이론 폭발의 영향으로 새 이론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련의 서구 추수주의도 문제다.
다섯째, 서구의 이론을 한국문학을 헤아리는 하나의 참조의 틀로 파악해야 한다.
여섯째, 문화라는 거시적 스펙트럼 안에서 문학을 연구해야 한다. 문맥과 상황을 통한 지나친 문학중심주의는 지양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평과 구별되지 않는 논문은 물론, 저널리즘 지향의 월평이나 해설적 비평이 연구 또는 논문으로 둔갑한다면 문제다.
▲책 속으로
그러나 서구시의 영향 못지않게 전통적인 자생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서구시가 근대 이후 한국시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자극일 뿐, 한국시 자체 내의 전통적인 경험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1920년대 자유시에 작용한 서구시 또는 일본시의 영향을 폄하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인 경험에의 귀의歸依 자체가 그러한 영향에 자극되고 이루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구적인 경험 또한 전통적인 경험과 아무런 맥락 없이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문학 자체 내의 내부적인 변화에 수용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내부적인 변화를 떠나서 서구 문학의 영향은 의미가 없다. 또한 변화의 결과가 영향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무용가 조택원趙澤元은 “홀홀 벗고 춤춘다는 파리에 가서 옷 입고 추는 법”을 배워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비교문학 논의가 소재적인 유사성을 살피는 등 선행 작업으로서의 실증적인 이입사移入史 일변도로 생각하는 것은 극히 오도적이다. 이식과 영향사의 동시적 관점에서 서구시의 한국적 양상을 보는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1부 2장 32∼33쪽).
1920년대 초기시에 나타나는 이러한 낭만적이고 개아적個我的인 세계가 1920년대 중반을 계기로 자유시건 경향시건 그 상위를 넘어, 현실적이고 상호텍스트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적公的인 세계로 바뀐 것은 중요한 변화다. 1920년대 중반 이후 한국시가 1920년대 초 낭만적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표현의 시들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만큼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중반에 이르는 한국시는 현실적 상상력으로 착색된 리얼리즘 시 일변도였다. 더구나 프로시의 경우, 카프운동의 볼셰비키화로 전환한 이래 리얼리즘 성향의 시는 종래의 경향적인 성격에서 계급적인 시각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정치구호에 가까운 아지·프로시들이 그 후 문단의 지배적인 담론談論으로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객관적 현실을 시로 형상화하기보다 정치적 구호의 직설적 번역이나 극단적인 도식성과 관념성에 빠진 이른바 ‘뼈다귀시’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2부 3장 149∼150쪽).
이런 점에서 ‘유리창 1’ 또한 “시인의 비애의 감정이 유리의 형체에 와서 태어난” 시편이다. ‘유리창 1’은 유리를 닦고 다스리는 마음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상흔이 낭자하다. 유리를 닦는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다. 주관적인 진술이 완전히 배제되고 장면의 묘사뿐이다. 김춘수의 지적과 같이 이미지가 서술에 그치고 있다. 관념이나 감정과 같은 인간적인 요소가 완전할 정도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의 방법과 인식을 그 후 시론 ?시의 위의威儀?에서 요약, 정리하고 있다. 시가 울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서서히 눈물을 저작詛嚼할 여유를 주는 것은 “안으로 열하고 겉으로 서늘”한 시의 위의를 거쳤기 때문이며 “슬픈 어머니가 기쁜 아기를 탄생한다”는 시인 자신의 시론의 반영인 셈이다. 그만큼 감정의 절제가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보여주는 한 증거가 되어준다. 모름지기 겉으로 얼음처럼 차가워야 한다고 믿었던 그로서도 자식을 잃은 통한만은 결국 한 조각의 얼음이게 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얼음이지만 안으로는 핏자국 낭자한 아픔을 통절히 씹고 있었다. 후기 시집 ??백록담??에 이르러 이러한 감정의 절제는 무사無私·무시無時의 경지로 발전하게 된다(3부 정지용론 189쪽).
▲지은이 박철희朴喆熙 thro=1937년 제주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후 영남대학교, 서강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196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현대문학지에 문학평론이 천료되었다. 현대문학상, 서울문화예술평론상, 제주도문화상, 조연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저서로는 ‘한국시사연구’(일조각, 1980), ‘서정과 인식’(이우출판사, 1982), ‘혜산 박두진’(문화관광부, 2004), ‘문학연구 입문’(형설출판사, 2007) 등이 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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