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드라마는 현실의 특정 국면을 포착하거나, 변화하는 감수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상상하고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특정한 단면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현실과 독특한 관계를 맺는 매체다. 대부분의 대중예술이 그렇듯이 드라마 역시 현실을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어떤 징후들을 포착함으로써 전과는 달라진 사회적 변화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4월11일 방송을 시작한 MBC 드라마 ‘바니와 오빠들’은 그런 점에서 중요한 징후를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스무 살 무렵의 첫 연애를 실패로 끝낸 주인공 바니(노정의 분)가 이후 나타난 잘난 네 명의 오빠에게 사랑을 받게 되고, 그들과 얽히며 비로소 진짜 설렘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다.
흥미로운 점은 바니가 자신을 ‘얼빠’라고 규정하며 외모에 끌리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간 남성의 외모를 중심으로 욕망을 표출하는 여성 캐릭터는 흔치 않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사회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인물상에 부합해야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은 그 사회가 긍정적으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성적으로 순진하고 욕망 없이 그저 예쁘고 착하기만 했던 존재였다면, 이제는 자신의 욕망에 노골적으로 충실한 여성 캐릭터도 공감받는 주인공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세상으로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그동안 많은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여성들은 남성의 경제력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갖춘 남성들은 대체로 ‘얼빠’였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여성 주인공이 얼빠로 설정된 것은 여성도 이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수 있고 그것을 사회가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바니가 실패한 첫 연애의 상대는 자신을 좋아해 주는 남자였다. 이 설정은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자기를 좋아해 주는 남자와 결혼하라’는 오래된 조언이 시대착오적임을 드러낸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여성들의 경제적, 물질적 위치와 조건이 달라지고 있으며, 이제 여성들도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선택권을 가진 주체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얼빠일 수 있다’는 말은 주체로서의 욕망을 드러내는 문화적 언어라 할 수 있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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