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 산맥 골짜기에 있는 우루밤바(Urubamba) 계곡은 케추아어로 ‘성스러운 계곡’이라는 뜻이다. 골짜기로 우루밤바 강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잉카의 유적들과 인디오 촌락들이 형성되어 있다.
쿠스코에서 우루밤바행 버스를 탄다. 오늘이 인디오 마을의 장이 서는 일요일이라 버스는 초만원이다. 쿠스코에서 우루밤바 계곡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친체로’를 거쳐 가는 길과 오늘 장이 서는 ‘피삭(Pisaq, Pisac)’ 마을을 경유하는 길이다. 어느 길을 가든 높은 안데스 고갯길을 넘어야만 한다.
분지인 쿠스코 시내를 벗어나기 위해 버스는 해발 3700∼4000m의 언덕길을 힘겹게 오른다. 이 길은 스페인 침략자들을 피해 잉카의 전사들이 퇴각하던 길이다. 삭사이와만(Sacsaywaman, Sacsayhuaman) 유적이 보일 즈음 쿠스코 시내는 어느덧 저만큼 발아래에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6월 24일이 되면 인티 라이미(Inti Raymi)라는 태양제가 열린다.
높은 고개를 넘어서자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계곡들을 지난다. 알파카를 몰고 나온 아이들이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든다. 능선 너머로 펼쳐지는 5000m급 만년설 봉우리들을 보며 안데스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능선을 계속 달리던 차가 계곡 아래로 내려서기 시작한다. 버스는 강에 걸린 다리를 건너 일요시장이 서는 피삭 인디오 마을에 닿는다.
성당 주변 공터에 장이 서고, 장터로 향하는 인디오 아낙들의 발길이 바빠진다. 양 갈래로 땋은 여자들의 머리 위에는 하나같이 챙 넓은 모자들이 얹어져 있고 어깨에는 보따리가 매어져 있다. 그들은 손수 짠 직물류와 각종 공예품을 들고 나와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직접 재배한 야채와 곡식들이 펼쳐져 있다. 특히 말린 감자와 옥수수가 눈에 많이 띈다.
◇우루밤바 골짜기에 있는 잉카 시대의 유적, 오얀타이탐보. |
장이 열리는 마을 뒤편으로 가파른 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잉카 시대의 요새가 있다고 한다. 40여분을 힘들게 오르자 전망대 같은 곳이 나타났지만, 내가 가고자 했던 요새는 아닌 것 같다. 길을 물어보고 싶지만 다니는 사람은커녕 그 흔한 알파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고산증으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우루밤바 계곡은 한 폭의 그림이다. 우루밤바 강 상류인 빌카노 강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흘러간다. 저 강물들은 아마존 강으로 흘러들어 대서양에서 그 지친 몸을 누일 것이다.
피삭을 출발한 버스는 우루밤바 마을에 대부분의 승객을 내려주고, 버스의 종착지인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까지 왔다. 이곳은 잉카시대의 중요한 역참도시로 마추픽추로 향하는 마지막 보급도시였다고 전해진다.
마을로 들어가 본다. 이곳은 잉카가 설계한 마을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그 당시 만들어졌던 수로는 몇 백년이 지난 지금도 골목골목마다 흐르고 있다. 마을 뒤편 유적지에 올라본다. 45도 정도 경사면에 다단계로 석축을 쌓아 만든 밭이 보이고 그 사이로 계단 길이 급하게 이어진다. 꼭대기에는 ‘태양의 거울’이라 불리는 여섯 개의 거석들이 있다. 거대한 돌을 어떻게 산꼭대기까지 끌어올려 저리도 정교하게 짜 맞추었을까.
◇우루밤바 골짜기에 있는 피삭 인디오 마을의 일요시장 풍경. |
이곳은 망코 잉카(잉카의 마지막 지도자)가 스페인군에 최후로 저항하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패배한 잉카 병사들은 ‘비르카밤바’로 사라졌다고 전한다. 그 후 많은 탐험가들이 비르카밤바를 찾아 안데스 협곡을 누볐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미국의 탐험가 하이람 빙엄(Hiram Bingham)은 비루카밤바라는 도시가 있다는 고전 기록을 좇다가 마추픽추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내리던 비가 멈추고 안개가 유적지를 감싸고 있다. 잉카의 신비가 저 안개 속에 가려져 나를 한없는 상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한 인디오가 유적지 바위에 앉아 안데스의 팬 플룻인 삼포냐(Zampona)로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를 연주한다. 몰락한 잉카의 슬픈 전설을 노래한 엘 콘도르 파사. 우리에게는 ‘사이먼 & 가펑클’의 ‘철새는 날아가고’로 더 친숙한 음악이다.
콘도르 새야, 콘도르 새야
안데스의 하늘을 나는 콘도르 새야
나를 안데스로 데려다 주렴
내 고향 안데스로 돌아가 형제들과
그곳에서 살고 싶단다
먼 옛날 잉카의 시간 속 풍경도 저러했으리라….
아련한 피리소리를 들으며 잉카의 신화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작가
◀여행 사진가이자 작가인 이해선씨는 1990년부터 사람의 발길이 드문 세계 오지를 누비며 기록한 사진과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해 왔다. 1993년 바탕골 미술관에서 ‘낯선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10루피로 산 행복’, ‘모아이 블루’, ‘울지마, 자밀라’ 등 여러 권의 여행기를 냈다.
◇잉카의 옛 수도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 |
# 여행정보
한국에서 페루까지는 직항편이 없고, 미국 LA나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야 한다. 우루밤바 계곡의 여행 기점은 잉카의 수도 쿠스코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동남쪽으로 약 1000㎞ 떨어져 있어 비행기로 1시간 반 남짓 걸린다. 자동차로는 워낙 길이 험하고 구불구불해 2박3일 정도 소요된다. 쿠스코에서 우루밤바 계곡까지 버스들이 다니지만, 쿠스코 현지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우루밤바 계곡 투어에 참가하면 쉽게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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