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생산물(벼) 보관창고로 보이는 구덩이의 발견은 야요이(彌生·BC 3세기∼AD 3세기)시대 초기 벼농사 유적인 인근 나바다케(菜田) 유적 출토물과 맞물려 일본의 벼농사 문화가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기존 학설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증거가 됐다. 요시노가리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시기적으로 300∼500년 앞서는 비슷한 형태와 성격의 유적이 진주 대평리와 부여 송국리 등에서 발굴됐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본 사가현 교육위원회와 공동으로 16일부터 12월2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2000여년 전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활발하게 교류했던 양국의 BC 5세기∼AD 3세기 유물 600여점을 모아 전시하는 기획특별전 ‘요시노가리, 일본 속의 고대 한국’을 개최한다. 요시노가리 유적에서 출토된 세형동검을 비롯한 일본의 국가중요문화재 20여점이 포함돼 있다. 농경문화와 국가 형성 직전 단계의 양국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봄으로써 그 의미와 가치를 종합적으로 조명하자는 취지다.
한국 학계는 벼농사 중심의 요시노가리 유적에서 분구묘((墳丘墓·도랑과 비슷한 시설물을 무덤 주위에 돌린 무덤 형태)와 독무덤, 고인돌 등 한반도계 유물이 대량 출토된 점으로 미뤄 일본의 농경 문화가 한반도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본 학계 일부는 기원전 5000년 전 중국 양쯔강 하류에서 시작된 벼농사 문화가 서해를 건너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보기도 한다. 이근우 부경대 교수(사학과)는 “야요이 문화의 벼농사를 비롯해 청동기, 석기, 토기 등 문화의 세부적인 요소를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면 중국에서 직접 건너갔다기보다는 한반도 남부에서 건너간 것으로 봐야 옳다”고 말했다.
전시는 크게 ‘한반도 농경문화와 일본 전파’ ‘야요이 마을의 탄생’ ‘고대 한반도와 야요이 마을의 생활’ ‘한반도 출토 일본 유물과 한일 문화 교류’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한반도 농경문화와 일본 전파’에서는 여주 흔암리, 진주 대평리, 부여 송국리 등 유적을 통해 한반도 벼농사의 시작과 발전을 밝히고 일본 나바다케와 고인돌 유적인 마루야마 유적 출토품이 국내 처음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송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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