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문학청년이었던 사람이라면 외경심을 품고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라는 길고 생경하고 이국적인 이름을 발음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세계적 대문호의 ‘고전’이라는 권위로 무장한 그의 두꺼운 소설을 끙끙대며 읽던 젊은 날이 새롭다. 책은 그런 추억들이 먼지로 켜켜이 쌓인 책장을 다시 들춰 보게 한다.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석영중 교수는 “도스토옙스키가 재미있다!”는 학생들의 반응에 “신바람이 나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집필 동기를 이야기했다. 그 길고도 깊은 고전이 ‘요즘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진정 재미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석 교수는 한마디로 ‘돈’이라고 말한다.
“돈은 주조된 자유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던 도스토옙스키는 돈 문제가 일상적인 삶과 직결되는 현재에도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돈’을 추구하는 것을 저급하고 속물적인 일로 치부하는 시대적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먹고살 돈을 벌기 위해 ‘팔리는 소설’을 쓴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했던 것. 비록 도스토옙스키가 대중의 기호에 부합하기 위해 ‘돈과 살인, 치정’을 이야기 소재로 선택했지만, 그가 위대한 이유는 이토록 통속적인 소재로 세기를 뛰어넘는 철학과 사상과 예술을 빚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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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석영중 지음/위즈덤하우스/1만3000원 |
책은 ‘돈’을 통해 도스토옙스키의 문학 세계를 재해석한다. 그렇다고 딱딱한 문학이론서는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재미있는 것만큼 이 책도 재미있다. 석 교수는 언제나 ‘돈’이 가장 큰 이슈였던 도스토옙스키의 인생과 실제로 거의 매 쪽 돈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소설들을 넘나들면서 우리를 가장 통속적이고 가장 철학적이며 가장 현대적인 문학 세계로 안내한다. 그리고 가식이나 허세 없이 인간과 사회와 생을 관찰하고 그 중심에 ‘돈’이 있다는 진실을 똑바로 마주했던 그의 명징한 ‘돈의 철학, 돈의 해부학, 돈의 심리학’을 펼쳐보인다.
책이 많은 독자에게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문학을 사랑하고,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나도 책을 만들면서 ‘돈’에 울고 웃는, 급기야 죽고 사는 우리네와 다르지 않았던 도스토옙스키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박선영 위즈덤하우스 1분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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