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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이시대의 풍류] 귀농15년차 前 노동운동가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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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8-29 13:40:45 수정 : 2008-08-29 13: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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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품같은 자연… 치매도 낫게 하더라”
◇전희식씨가 노모를 모시고 사는 세 칸짜리 산골집 툇마루에 앉아 시골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게서 시골생활은 모든 생명체가 존엄해질 수 있는 생태환경을 체득해 가는 장이다.
한 발 나가면 계곡물이요, 눈을 뜨면 산이다. 나비와 산새들이 날아들고 바람마저 푸르다. 텃밭에서 따온 토마토를 곁들여 마시는 차맛도 별미스럽다. 호박잎과 깻잎으로 부친 전을 입안 가득 넣으니 온몸에 풋풋한 풀향이 감돈다. 자연의 냄새다. 전북 장수 남덕유산 자락에 둥지를 튼 귀농 15년차 전희식(50)씨의 ‘귀거래사’ 풍경이다. 완주군에 터를 잡아 농사를 짓고 있지만 2년 전 80대 노모가 치매에 걸리자 직접 수발을 들기 위해 이곳의 빈집을 따로 구해 손질하고 어머니를 모셨다. 20년째 비어 있던 100년도 넘은 세 칸 집이지만 온돌과 황토벽이 마음을 푸근케 해준다. 11남매를 키워냈던 집답다. 산길을 한참 올라 산자락에 나직이 업드린 집에 비안개라도 드리우면 별세상이다.

예전엔 30가구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살던 산골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뜰과 마당에 있었던 호두와 감, 뽕 나무만이 당시를 가늠케 해 줄 뿐이다. 전씨는 주변 수풀을 헤치고 텃밭들을 다시 일궈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사람의 손길을 떠나 야생으로 자란 감나무와 뽕나무 잎을 채취해 만든 차는 자연의 엑기스나 다름없다.

생태 농부를 자부하며 살아가던 전씨는 3년 전 어느날 서울 큰형 집에 들르면서 큰 자괴감에 빠진다. 외딴방에서 기저귀를 차고 지내던 어머니가 막내인 그에게 “오줌 누는 데가 따갑다”며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날 그는 벌겋게 짓무른 어머니 아랫도리와 하얗게 세어버린 체모를 보고 울었다. 자식 키우면서 똥걸레를 빠신 햇수만큼은 다 못하더라도 5년 정도는 그의 인생을 잘라 어머니에게 바치기로 했다. 아내와 두 남매도 이해를 했다. 사시사철 두 평 남짓한 방에서 밥도 받아먹고 똥오줌도 방에서 해결하는 것은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편할지 모르지만 노모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이라 여겼다. 농약과 항생제를 범벅해 키우는 일부 시설재배농과 양계농이 연상됐다. 생태자연농업이 뭔가. 농약과 제초제는 물론 비닐 시설에 가두지 않고 키우는 농법이 아닌가. 생태인간도 못 되면서 생태농업을 한다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파란 하늘과 철 따라 피고 지는 꽃, 산새들의 지저귐이 바람결에 실려오는 것을 어머니가 느끼고 보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이 내리는 날엔 신문지에 눈을 담아 어머니 손에 털어 놓았다. 심리적 수치심을 덜어 주기 위해 어머니의 기저귀도 없애기로 했다. 어머니에게 기저귀를 채워 놓는 것은 ‘똥오줌도 못 가리는 애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스스로 자인케 하는 처사라 여겼다. 음식 섭취와 배뇨시간의 상관관계를 면밀히 살핀 뒤, 때맞춰 변기를 대령하는 두 달간의 노력 끝에 배뇨감각이 회복된 것은 물론 당신 스스로 안방 뒷문을 열고 나가 전용 뒷간에서 똥오줌을 볼 수 있게 됐다.

늘 방안에 앉아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괴로워했을 어머니는 요즘엔 그럴 시간이 없다. 전씨가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채소를 다듬는 등 잔일거리를 일부러 만들어 맡긴다. 노인들은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위축돼, 생산적인 일을 하게 해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이런 노력들은 어머니의 예전 일부 기억이 회복되는 효과로 나타났다. 

◇어머니 간식거리인 깻잎 전을 만들기 위해 전희식씨가 비가 내리는 가운데 텃밭에서 자연농법으로 키운 깻잎을 따고 있다.
치매 노인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그럴 땐 일부러 양말에 구멍을 내 어머니에게 슬쩍 내밀면 어머니의 분노는 어느 새 사라지고 바느질에 집중한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할 때 끼어드는 것이 망상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전씨는 지난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치매라고 여긴다.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지난 3년여 동안 수많은 관련 책과 자료를 탐독하고, 노인 요양시설에서의 도우미 활동 결과 얻게 된 결론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 좋다는 동물치료를 위해 고양이와 닭도 키우게 하고 있다. 밭일에도 어머니를 대동한다. 일광욕 효과뿐 아니라 일은 더뎌도 짜증과 울화 푸념할 시간을 없애기 위해서다. 이런 경험들은 ‘똥꽃’(그물코)이란 책으로 지난3월 출간됐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존엄’이다. ‘관리’라는 명목으로 우리 사회가 노인에게 얼마나 많은 무례와 무시를 범하고 있는가. 전씨는 집을 들고 날 때도 언제나 어머니에게 큰절로 인사를 드리고 정상인에게 하듯 모든 일을 고한다. 그래도 원거리 외출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역정이 나 있다. 과자 등을 내밀며 한동안 달래야 풀어지곤 한다. 집을 찾는 방문객에게도 거부감이 심해 같은 방법으로 누그러트린다. 치매노인에게 역정도 당당함의 표현이기에 반가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전씨가 강조하는 치매노인 치유는 관리나 치료의 대상이 아닌 삶의 주체자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치매노인 앞에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비웃거나 무시, 개탄하는 것은 물론, 말이나 행동을 교정해 주려는 것도 삼가케 한다. 그로인해 좌절하고 그러다가 끝내는 언제나 부정당하는 자신마저도 포기하는 것이 바로 치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든 이물질이 치매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황당한 말에도 늘 “아∼그래요” 하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전씨는 노인 요양시설의 일률적인 환자복과 식단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뭘 입을까, 뭘 먹을까 ”스스로 결정토록 해 주어야 한다는 소신이다. 그는 집에서도 늘 어머니에게 “뭘 입으시겠냐, 뭘 드시겠냐’며 묻는다. “밥 먹지 뭘 먹어, 입던 옷 입지 뭘 입어”라는 뻔한 답이 반복돼도 그는 또 여쭌다. 삶의 주체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동 육아 같은 생태공동양노를 모색하고 있는 전씨는 또한 치매노인의 신비로움에 주목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되고, 의식과 무의식은 물론 현실과 꿈, 상상을 넘나드는 모습은 환타지 콘텐츠로 손색이 없다는 얘기다. 때론 선승의 법문같이 다가오기도 한단다.

전씨는 원래 노동운동가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 모진 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된 어느 날 그는 문득 삶의 본질을 찾아 출가를 결심한다. 행자생활을 1년 가까이 했지만 처자가 있는 몸이라 출가를 접고 버금가는 환경으로 산골을 선택했다. 지난 삶은 체제, 제도, 권력집단 등 외재적 변수로 문제를 파악하는 데 익숙한 시절이었다. 외부의 적에게 치닫다 보니 자아 고갈에 직면했다. 그에게 시골생활은 내면으로 향하는 삶의 방식의 선택이다. 은퇴 후 전원생활 같은 것이 아니다. 그에게서 귀농은 단지 직업을 농업으로 바꾸는 일이 아닌 삶의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하는 것이다. 끝없는 소유와 욕망에 사로잡혀 인생을 소진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자연농법으로 생산된 채식 위주의 먹거리와 대체의학 등을 통한 건강 유지는 의료비를 제로에 가깝게 만들었다. 생활비도 도회지의 20% 정도면 충분하다. 올해엔 자연농법으로 키운 감자로 수백만원을 벌었다. 그의 집과 농토는 사람 건강에 가장 좋다는 해발 600∼700m에 위치해 있다.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지요. 내면의 자기 시간으로 움츠러들기엔 제격이지요.” 그는 청정하게 살아가는 데 가장 좋은 조건이라 했다. 농한기에는 국악과 영화 풍수학 등 각종 단체에서 마련하는 강의를 듣는다. 그는 전주영화제에도 출품을 한 아마추어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문화 놀이 노동이 하나되는 일체의 삶을 그는 꿈꾼다.

앞산은 시시각각 변화는 산수화다. 그는 요즘 왠지 혼자 있는 시간마저도 충만감으로 벅차다. 자연과 통했다는 통쾌감이다.

편완식 문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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