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상 남자인 트랜스젠더(성전환자)를 성폭행한 20대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강간죄를 적용, 유죄를 선고했다. (세계일보 2009년 2월 12일자 10면 보도)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 부장판사)는 18일 트랜스젠더인 김모(58·부산시 부산진구)씨를 흉기로 위협, 성폭행한 혐의(주거침입 강간 등)로 기소된 신모(28)씨에 대산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신 피고인은 성전환자인 피해자 김씨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절취하고 부엌에 있던 흉기로 피해자를 협박, 다양한 방법으로 성폭행한 점이 인정될 뿐만 아니라 그 범행 방법이 초범의 범행으로 믿기 어려운 악질이어서 엄중한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다만 신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을 모두 시인하고 구금 중 수차에 걸쳐 스스로 작성한 반성문(8회)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과 공소제기 이후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한 데다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 젊은 피고인의 앞날을 위하여 ‘선처해달라’고 간청한 점 등을 참작해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유죄인정 사유로 피고인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후 30년 이상을 여성으로 살아온 피해자에게 성적 침해행위를 한 사실이 명백히 인정되고, 피해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부녀로서 강간죄의 객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신씨는 지난해 8월31일 부산 부산진구 한 가정집에 침입, 여성 복장을 한 트랜스젠더 김씨를 흉기로 위협, 현금 10만원을 빼앗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애초 신씨에 대해 특수강도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으나 재판부와 협의를 거쳐 주거침입 강제추행을 예비적 공소사실로 하고, 주거침입 강간을 주의적 공소사실로 공소장을 변경한 뒤 지난 11일 결심공판에서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부산지법의 이번 선고는 국내 첫 판결로 법조계는 물론 사회적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996년 같은 유형의 사건에 대해 성전환자의 경우 생식능력이 없는 점 등을 들어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것이어서 향후 상급심 판결이 주목된다.
외국의 사례로는 유럽의 경우 스웨덴과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대부분의 국가가 성전환을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과 캐나다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만 영국은 성전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박주영 부산지법 공보판사는 “이번 판결은 성전환자가 민·형사상 완전한 여성임을 확정짓는 획기적인 판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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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환자 강간죄’ 첫 인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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