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인도 불교 성지를 가다] <上> 사카족 왕자 정각을 이루다

입력 : 2009-02-25 17:17:31 수정 : 2009-02-25 17:17:3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갠지스강 푸른달 뜨면 붓다의 가르침 오롯이…
불자들에게 2월은 성지순례의 계절이다. 이때의 인도는 건기여서 여행하기에도 제격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이 마련한 ‘불교 8대 성지순례 프로그램’에 동행해 12일부터 22일까지 붓다의 80년 구도 역정이 스며 있는 인도와 네팔을 찾았다. 이곳에는 붓다가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를 비롯한 탄생지 룸비니, 첫 설법지 사르나트, 열반지 쿠시나가르 등 8대 성지가 있다. 이들 성지는 인도 북부 중앙에서 동서 400km, 남북 200km 반경에 집중돼 있다. 삶도, 문화도, 죽음마저도 불가사의한 나라 인도의 불교 성지순례 여정을 3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마하보디사원 경내에서 오체투지하는 티베트 승려들(사진 왼쪽)과 사원 안에 모셔진 붓다상.
인도(印度)의 어원은 인도 서북부를 흐르는 강 ‘인더스(Indus)’와 연관이 있고, 산스크리트어 ‘달(Indu)’과도 관련을 맺는다. 현장(602?∼664) 법사의 ‘대당서역기’에는 ‘세계의 어둠 속에서 우리를 비추는 달’로 인도를 설명하고 있다. 인도는 고대로 많은 종교 사상가들이 등장했다. 고타마 붓다도 이러한 종교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출현해 인류 역사에 위대한 빛을 남기고 있다.

붓다는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올해 불기 2553년) 전 인도 북부 룸비니(현재는 네팔 영토)에서 태어났다. 모친인 카필라국의 왕비 마야부인이 아기를 낳으러 친정으로 가는 도중 사라수(沙羅樹)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동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붓다를 낳은 것이다. 광활한 들판에 자리 잡은 룸비니는 지금도 평화스러운 농촌 풍경을 하고 있다. 여느 성지처럼 룸비니도 오랜 세월 폐허로 방치돼 있다가 1896년 독일 고고학자 퓌러가 ‘아쇼카 석주’를 발견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인도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


기원전 250년경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은 정복 과정에서 빚어진 일부 살육 참상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불교에 귀의한다. 그가 인도 전역에 불교를 전하며 붓다의 자취가 서린 곳에 세운 돌기둥이 아쇼카 석주다. 이때 석주와 함께 스투파(탑)와 사원도 세웠으나 무슬림의 침공 등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석주마저 남은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세계 불교 산실로 거듭나고 있는 룸비니에는 아쇼카 석주와 마야데비 사원 터, 마야부인이 출산 후 목욕을 했다는 싯다르타 연못, 승원 터 등이 발굴돼 전 세계 불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인도-네팔 국경을 지나 룸비니로 향하는 길가에 즐비한 망고나무는 그 옛날 순례자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덜컹대는 버스에 시달리며 룸비니를 찾던 날 포항 죽림사와 진해 대광사 신도들이 이곳 성지에서 무릎을 조아리며 눈물로 기도하는 장면이 가슴 찡하게 목격됐다.

암울한 시대는 성인을 부르는가. 봄·여름·겨울궁전이 있고, 최상의 옷감과 노래와 춤이 만발하는 카필라성에서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안주할 수 없었다. 늙음(老)과 병듦(病), 죽음(死)을 절실히 생각한 그는 29살에 왕궁을 박차고 구도 행각에 나선다. 성곽 동쪽을 흐르는 아노마강을 건너 동남쪽으로 이동하며 계속해서 최고 단계의 여러 스승을 찾았으나, 그가 얻고자 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사상과 문화의 중심지 바이샬리를 무대로 ‘무소유처(無所有處)’의 가르침을 설파한 선인(仙人) 아라라 가라마라도 싯다르타의 구도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맨발에 머리를 빡빡 깎은 싯다르타는 히말라야 설산에서 발원해 수천km를 달려온 갠지스강을 건너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니련선하 근처 우루빌라 마을의 고행림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싯다르타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자 긴 고행에 빠진다.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어언 6년의 세월이 흐르자 몸이 야위어 손으로 배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질 정도였다. 죽음의 끝자락에서 싯다르타는 천녀(天女)의 소리를 듣는다. “리라(하프의 일종) 선을 너무 팽팽히 당기지 말라. 그 선이 끊어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게 하지도 말라. 소리가 울리지 않을 것이다.” 궁극적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안락과 고행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이때 이곳을 지나던 우루빌라 지방 성주의 딸 수자타가 쓰러져 있는 싯다르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조석으로 유미죽을 끓여 봉양한다. 몸을 추스른 싯다르타는 다시 니련선하 근처로 나가 보리수 아래에서 7일 동안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해탈의 즐거움이 가득했다. 붓다는 연기법을 깨우침으로써 출가의 과제였던 인간 존재를 구제할 길을 보았다. 모든 것은 조건이 있음으로써 생기기 때문에 조건을 없애면 그것도 없어지는 이치였다. ‘붓다’(진리를 깨달은 자)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붓다가 정각(正覺)을 이룬 보드가야로 가는 길. 인도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바하르주의 누더기 아스팔트는 곧게 뻗어 있으나 중앙선도 없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게 깔려 있다. 트럭이나 버스 뒤에는 어김없이 ‘horn please(경적을 울리시오)’라는 문구가 써 있다. 경적을 울리면 얼마든지 길을 비켜 주겠다는 뜻이다.

보드가야가 가까운지 니련선하를 끼고 있는 작고 조용한 마을 사이로 사원 하나가 우뚝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붓다의 정각지를 기념하는 높이 52m의 마하보디사원(대보리사)이다. 사원 입구는 먼 길을 달려온 각국의 순례객으로 붐볐다. 어마어마한 건축 규모며 아름다운 문양, 기하학적 예술미가 여간 빼어나지 않다. 세계 각국에서 온 1000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사원 구석구석에서 서로 경쟁이라는 하듯 기도정진하는 장면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국에서 온 불자들도 뒤질세라 탑 뒤에서 하루 3000배씩 절을 하며 차분하게 정진하고 있다. 서울 부암동 성불사 신도들이다. 한국인의 ‘독한’ 수행 모습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룸비니·보드가야(네팔·인도)=정성수 선임기자 hul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박보영 '빠져드는 눈빛'
  • 박보영 '빠져드는 눈빛'
  • 임지연 '러블리 미모'
  • 김민주 '청순미 폭발'
  • 김희애 '여전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