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쓰이는 ‘평화’의 의미를 보자. 우리의 추석 같은 명절 오봉(御盆)이 있는 일본의 8월엔 전국 각지에서 추모행사가 많이 열린다. 국가적 추모행사는 원자폭탄으로 약 40만명이 숨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일본은 전쟁 피해만을 드러낼 뿐 일제 침략으로 아시아에서만 2000만명 이상이 희생당한 사실은 뒷전이다. 그러면서 곳곳에 ‘평화공원’을 세워 추도하고 있다. 평화 가치의 뒤바뀜 현상이다.
추모행사는 신사에서 많이 열린다. 일본 곳곳에는 8만여개의 신사가 있다. 야스쿠니(靖國)신사는 그 핵이다. 일본 도쿄의 한가운데인 지요다구 왕궁 북쪽에 있다. 메이지유신 직후인 1869년 막부 군과의 싸움에서 숨진 영혼을 호국의 신으로 제사 지내기 위해 건립됐다. 말 그대로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나라건 호국영령을 모신 성역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1978년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A급 전범 14명을 합사한 데 있다. 그뿐인가. 역대 총리 등이 공식 참배하고 군국주의의 망령을 부활시키고 있다. 한술 더 떠 대형 함포 등 각종 병기까지 잔뜩 전시하고 있다. 전쟁박물관이 따로 없다.
요즘 일본 정치권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논란으로 뜨겁다. 8·30 중의원 선거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54년 만의 정권교체 기대에 부푼 제1야당 민주당과 다른 야당은 대체 추도시설을 짓겠다고 공약하는 반면 여당인 자민당은 반발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의 상징은 평화를 뜻하는 흰 비둘기다. 평화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일본, 일본인이기를 바란다.
황종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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