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이야기다. 대한민국 국세, 애국가와 함께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태극기의 최초 창안자가 제3차 일본 수신사 박영효가 1882년 9월 일본으로 가는 배 위에서 만들었다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니….
1990년 등단해 10여편의 소설집을 낸 박충훈씨는 논픽션 ‘태극기의 탄생―조선 국기 제정에 얽힌 진실’(21세기북스)에서 “태극기의 창안자는 박영효가 아니라 이응준”이라고 공개하며 ‘이응준 태극기’는 ‘박영효 태극기’보다 2개월 이상 앞섰다고 단정한다.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때 처음 내걸린 ‘이응준 태극기’는 그동안 정확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추정에 그쳤으나 1882년 7월 미국 해군부 항해국에서 제작한 문서 ‘해양 국가들의 깃발’에 실려 있는 게 최근 발견됨으로써 말로만 전해오던 이응준 태극기의 실체가 드러났다.
박영효는 3개월 후 청나라가 ‘조선은 청의 속국’이라며 조선 측에 청나라의 ‘황룡기’와 비슷한 ‘청운홍룡기’를 게양할 것을 요구하자 메이지마루 호의 선장인 영국인 제임스에게 자문을 구해 ‘이응준 태극기’를 토대로 사괘의 좌우를 바꿨을 뿐이다.
태극기가 조선국기로 공식 반포된 때는 이듬해인 고종 20년 음력 1월 27일이고, 대한민국 국기로 제정된 것은 1949년 10월 15일(대한민국 문교부 고시 제2호)이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이응준은 도대체 누구이며, 그동안 왜 그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응준은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역관으로서 청나라 측 역관을 통해 미국과의 통역을 담당했다. 김홍집의 명에 의해 국기를 만들었다는 기록 외에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1832년 태어난 이응준은 1850년(철종 1년) 증광시 역과에 차석으로 합격한 뒤 역관이 되었다. 1889년 사신단의 일행으로 청나라에 갔던 이응준은 귀국 즉시 체포돼 의금부에 수감됐다. 청나라 북양 군벌의 실력자인 원세개가 ‘이응준이 왕을 속이고 2만 금을 가로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고종실록’ 고종 26년(1889) 3월 30일).”
벌을 받고 하루아침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세종 때의 장영실처럼, 이응준도 이후 기록에 등장하지 않게 된 것이다. 반면 ‘태극기를 만든 사람’으로 역사에 남은 사람은 중인 신분의 역관 이응준이 아니라 철종 임금의 부마인 금릉위 박영효였다.
저자는 “‘우리 청룡기를 국기로 쓰라’는 권유를 무시당했던 청나라가 조선의 국기를 창안한 이응준을 눈엣가시로 봤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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