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사는 곳의 기후가 어떠하든 땅의 유형이 어떠하든 균류·세균·원생동물·선형동물·절지동물 등 토양 먹이그물의 구성원들이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 동안 일하도록 하라. 그러면 여러분의 밭과 정원이 더 좋아질 것이고 여러분은 더 훌륭한 농부, 더 훌륭한 원예가가 될 것이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와 같은 화학 물질이 필요 없다는 유기농 텃밭, 유기농 정원은 어떤 원리로 작동될까? 사람들은 대부분 유기농업에서 좋은 흙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좋은 흙이란 어떤 흙인지는 물론 흙 자체도 잘 아는 이는 사실 드문 편이다.
좋은 흙이란 무엇일까? 좋은 흙을 가진 유기농 텃밭과 정원이라면, 농약·살충제·살균제를 대신해 병균과 싸우고, 화학 비료를 대신해 식물에 필요한 온갖 양분들을 만들어주는 생물·미생물이 흙에서 산다. 그런 흙이 좋은 흙이다.
유기농업의 진정한 주인공은 놀랍게도 농부가 아니라 토양 미생물·생물이다. 유기농의 세계에서 인간은 토양 먹이그물의 도움을 받는 식물들이 내놓는 결실을 취하면 그만인 존재다. 그래서 ‘땡큐 아메바-텃밭 농부를 위한 토양 먹이그물 활용법’은 유기농으로 텃밭과 정원을 가꾸려는 이들에게 이렇게 권한다. 인위적으로 화학 양분을 공급하지 말고, 기계로 밭을 갈며 흙을 다지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 그 대신 흙과 흙 속에 사는 생물·미생물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라는 것. 그러고 나서는 토양 먹이그물에 속한 토양 생물과 한편이 되는 쪽을 택하고, 토양 생물들이 일하게끔 만들라는 것이다.
▲왜 먹이사슬이 아니라 ‘먹이그물’인가?
흙은 토양 먹이그물의 모든 생물이 사는 집이다. 좋은 흙은 세균, 균류, 원생동물, 선형동물, 지렁이, 미세 절지동물들이 바글거리며 사는 흙이다. 토양 먹이그물의 토양 생물들은 한 가지 이상의 먹이를 서로 먹고, 한 가지 생물 이상에게 서로 먹힌다. 누가 누구를 먹는지 그림을 그려보면 직선의 사슬이 아니라 서로 이어지고 얽히는 그물이 되는 것이다. 이 얽히고설킨 토양 먹이그물 덕에 식물은 땅속 영양분을 먹고 자랄 수 있는 것이다.
토양 먹이그물의 맨 밑바닥에는 세균과 균류가 산다. 식물은 이들에게 뿌리로 삼출액을 내주고, 세균과 균류는 삼출액을 받아먹으며 다시 아메바나 짚신벌레 같은 원생동물과 선형동물을 끌어들여선 그들의 먹이가 된다. 원생동물과 선형동물이 내놓는 물질은 식물이 영양분으로 흡수하는 식이다.
현미경이 열어 보여준 흙 속 세상은 이렇다. 토양 먹이그물의 한가운데에 식물이 있다. 식물은 자신을 위해 뿌리 주변 지역(근권)의 먹이그물을 삼출액으로 통제한다. 성장 시기와 필요한 양분에 따라 세균과 균류의 수와 종류를 조절하는 것이다. 근권에 사는 세균과 균류는 식물에 필요한 ‘비료 주머니’다. 식물에 꼭 필요한 질소 같은 양분을 제 몸속에 지니고 있다. 원생동물, 선형동물은 ‘비료 살포기’다. 이들은 세균과 균류라는 ‘비료 주머니’ 속에 갇힌 양분을 풀어놓는 일을 한다. 식물이 먹이그물을 통제하지만 식물의 생존은 이 먹이그물과의 상호작용에 달렸다. 이것은 식물이 진화한 이래로 변함없이 지켜온 완벽한 자연적 시스템이다. 토양 생물로부터 양분을 얻은 식물이 자연계를 순환시키는 것이다.
▲처음엔 일이 많아도 나중엔 적어진다!
이 순환을 간섭하고 방해하는 일이 바로 화학 물질을 뿌리고 기계로 밭을 갈고 다지는(경운) 일이다. 지은이들도 토양 먹이그물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그저 농약병이나 비료 포대에 적힌 설명대로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정원과 텃밭을 일궜다. 잔디가 죽어버리고 토마토에 병이 생기고 나무가 비실거릴 때마다 아무런 의문 없이 화학비료와 제초제, 살충제를 뿌려댔다.
식물이 필요한 질소의 80%는 아메바, 편모충, 섬모충 같은 원생동물이 만든다. 제초제, 살충제, 질소 화학 비료를 뿌리면 원생동물은 죽거나 떠나고, 이들이 유인할 지렁이나 절지동물들도 살지 못한다. 식물도 더 이상 토양 생물에서 양분을 얻으려고 하지 않게 되어서 결국엔 더더욱 화학 물질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공저자인 원예작가 제프 로웬펠스와 텃밭 농사꾼 웨인 루이스도 관행처럼 화학 물질을 당연하게 사용했다. 그것은 수많은 원예가나 텃밭 농사꾼들 또한 간직했던 같은 생각이자, 더 편한 삶을 사는 방법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화학 물질 사용을 멈추면서 텃밭과 정원 일을 오히려 힘든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취미로 삼게 되었다. 물론 화학 물질에 오염된 땅을 복원하려면 처음엔 일이 좀 많을 것이다. 미생물이 그득한 퇴비나 퇴비차도 만들어야 하고, 제초제 대신 멀치(뿌리덮개 혹은 피복, mulch)도 깔아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토양 생물이 한번 자리를 잡게 되면 나중은 훨씬 수월해진다. 잔디밭에서는 개나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고, 농약, 살충제 같은 유해 물질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며, 가족들은 안전한 채소를 먹고 더 건강한 삶을 비로소 얻게 되었다.
토양 먹이그물이 정말로 식물 재배에 도움이 될까? 채소는 맛이 좋아지고 꽃은 더 예쁘게 피고, 나무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잘 자라게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토양 먹이그물이 나의 텃밭과 정원에서 과연 작동될지 확신을 얻고 싶다면 지은이들은 가까운 숲으로 가볼 것을 권한다. 농약, 제초제, 살충제 같은 화학 물질이 없어도 잘 굴러가는 숲은 숲의 토양 먹이그물에 의해 완벽하게 작동되고 있다. 책의 2부는 텃밭 채소, 한해살이풀, 여러해살이풀, 정원의 잔디, 교목, 관목 들을 키울 때 어떻게 토양 먹이그물을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과학자들의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을 토대로 지은이들은 19가지 규칙을 만들고, 이를 텃밭과 정원에 적용하라고 하는데, 이는 대부분 우리가 유기농업에서 실천하는 것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원리를 좀 더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그 과학의 핵심인 토양 생물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채소의 질산염 잔류 검사를 통해 일정 함량 이상이면 판매가 금지된다. ‘질소 과잉’의 폐해 때문이다. 질소 과잉은 관행농업은 물론 유기농업에서도 흔하다. 식물에 꼭 필요한 3대 영양소, 곧 질소, 인산, 칼리 가운데 질소는 식물의 성장과 생존에 필수적인 성분이다. 질소 과잉은 더 빠른 성장, 더 많은 수확을 원하는 인간의 욕심이 가져온 결과인 것이다.
토양 생물학자들은 1980년대가 되어서야 흙 속의 생물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다. 오리건 주립대 일레인 잉햄 박사를 비롯해 여러 연구자들은 흙에 세균이 더 많으냐 균류가 더 많으냐에 따라 자라는 식물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 그것은 식물 천이의 경로와도 같다는 것을 밝혀냈다. 곧 균류와 세균의 생물량 비율에 따라 식물이 좋아하는 흙이 다르다는 것이다. 채소, 잔디, 일년생 식물들은 세균이 많은 ‘경작지’ 흙을, 교목, 관목, 다년생 식물들은 균류가 많은 ‘삼림’ 토양을 좋아한다고 한다.
▲필수 영양소 ‘질소’의 두 얼굴
책은 여기서 토양의 세균과 균류의 생물량에 따라 질소의 화학적 성분이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하라고 한다. 암모늄과 질산이라는 2가지 형태로 이온화되는 질소를 각각 선호하는 식물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원리에 따라서 질소 화학비료의 관행적인 쓰임새를 살펴보면 질소 과잉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강력한 질산염으로 만들어진 질소 화학비료의 과잉은 토양 내 생물들이 사라지게 하고, 수질도 오염시키며, 질소 과잉 채소를 먹는 인간에겐 암을 유발시킨다. 그래서 지은이들이 꼽은 텃밭과 정원에 적용하는 토양 먹이그물 재배법의 제1~3 규칙은 질소를 염두에 둔 흙 관리다. 다시 말해 흙 속의 균류 대 세균 생물량 비율과 식물이 선호하는 질소의 종류를 염두에 두고 작물을 키우라는 것이다.
나머지 토양 먹이그물을 활용하는 규칙들은 부족한 토양 생물을 보충하는 퇴비, 멀칭, 퇴비차(茶)를 만들고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책은 내 텃밭과 정원에 누가 얼마나 사는지 알아보는 방법들(흔히 농업기술센터에서 받을 수 있는 토양 검정 외에 누구나 직접 해볼 수 있는 생물 트랙 설치법, 흙의 냄새 맡기, 균류 대 세균 생물량 검사 등)을 소개한다. 막 뽑은 녹색 잡초와 낙엽 같은 갈색 풀을 번갈아 쌓아 만드는 전통적인 ‘퇴비’ 만들기, 완성된 퇴비에 물과 공기를 주입해서 유용한 미생물을 더욱 증식시킨 ‘퇴비차(茶)’, 풀로 식물 주위를 덮는 ‘멀칭(mulching, 피복)’도 토양 생물을 늘리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좋은 흙이란 유용 생물이 바글바글한 것이다. 싱싱하거나 딱딱하고 메마른 유기물이 썩어 만들어진 퇴비도 토양 생물이 만들고, 식물에 필요한 풍부한 양분도 토양 생물이 만든다.
전통적인 퇴비 만들기는 곧 좋은 흙 만들기다. 그러니 토양 먹이그물을 활용한다고 해서 어려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다만 유기농 텃밭과 정원을 잘 가꾸려면, 땅위의 식물만 보아서 무엇을 더 줘야 할지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발아래 흙 속 세계에 대해 알라는 것이다. 그러면 유기농은 더욱 잘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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