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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영화시장의 그늘…영화인들 생계 '허덕'

입력 : 2011-02-10 17:08:54 수정 : 2011-02-10 17: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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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죽음으로 본 영화산업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지난달 29일 경기 안양시 석수동 월셋집에서 지병과 굶주림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최씨는 숨지기 전 이웃 주민의 집에 “며칠 새 아무것도 못 먹어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내용의 쪽지를 남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 죽음을 계기로 고질적인 저임금과 함께 사회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봤다.

◇영화계 종사자들이 2005년 4월 서울 충무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사들의 임금체불 사례 등을 고발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고은씨의 사망은 연 매출 1조원에 이르는 거대 산업으로 발전한 한국 영화시장의 그늘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인들은 최씨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한국 영화의 장기적인 성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영화산업 종사자들이 최소한의 생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이들이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산업구조를 개혁하고 정책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쏟아지고 있다.

◆생계 위협하는 낮은 임금

영화 관계자들은 시장 기반이 되는 임금과 성과배분 구조, 처우와 고용 등 시스템이 아직 구멍가게 수준에 그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지난 8일 “고인의 죽음 뒤에는 창작자 재능과 노력을 착취하고 단지 이윤 창출 도구로만 쓰려는 잔인한 대중문화산업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스태프의 낮은 임금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영화산업노조에 따르면 영화 스태프의 2009년 연평균 소득은 623만원으로 월평균 52만원에 불과하다. 이 같은 저임금은 영화 흥행에 따른 이익 성과배분 시스템이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영화 감독은 “투자 배급사, 유명 연예인 등과 달리 스태프들은 성과배분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지병과 굶주림으로 숨진 채 발견된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를 추모하는 트위터 글들.
◆잘못된 계약 관행과 불안정한 고용


잘못된 계약 관행도 영화인들의 처우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화 현장에선 원고료 일부만을 계약금으로 받고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이 걸려 잔금을 받거나 아예 제작이 무산돼 돈을 못 받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화계 현장에선 아직 ‘잔금작가’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이런 관행은 심각하다고 한다. 한 영화인은 “이는 영화계에선 오래된 관행”이라고 말했다. 카메라, 조명 등 일부 분야의 스태프는 외주업체 형태 등으로 어느 정도 고용 안정이 이뤄진 반면 감독과 작가 등은 프로젝트별로 채용되는 불안전한 고용이 이뤄지고 있다. 정기적으로 고용된 스태프는 촬영 회차 등에 따라 일정한 급여를 받지만 작가 등은 작품 흥행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기에 임금은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일’이 없는 경우엔 사실상 ‘백수’로 지낼 수밖에 없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2008년 이후 한국 영화계의 거품이 크게 빠지면서 작가를 포함한 영화인들은 더욱 엄혹한 시련기를 맞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 한 감독은 “3∼4년 전부터 영화계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시나리오 작가들의 처지는 더욱 열악해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소 사회안전망 만들어야

영화계 안팎에선 이제는 콘텐츠 산업 육성을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실제로 이를 육성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계약 전반에 대한 투명화와 개선이 필요하다. 미국 영화산업의 경우 계약 관계가 명료화되어 있고 각 직군별로 길드 등이 잘 조직돼 있어 스태프들이 최소한의 권익을 보호받고 있다.

실업부조금 제도 등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도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프랑스의 경우 공연영상 분야 예술인들은 단기간 고용된 노동자를 위한 실업급여 제도인 ‘엥테르미탕’의 혜택을 받고 있다. 독일에선 국가와 저작권 사용자가 예술인을 위해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해 연금과 의료보험 등을 제공하는 예술인 사회보험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최영재 한국영화산업노조 사무처장은 “영화 스태프들은 일반적으로 상시 고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실업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 같은 특수성을 반영, 실업부금제도 등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적으로는 영화 인력에 대한 안정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상생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영화 산업의 핵심이라는 인식 아래 성과 배분이 몇몇 흥행 배우나 배급사, 투자사에 집중되는 구조가 아닌 전체 영화인에게 돌아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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