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교사 “초등교 한자교육 찬성” 공교육 외면에 되레 사교육 붐 일어 최근 국내 최고 권위의 서예대전 대상 수상작에서 한자 2자를 잘못 쓴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됐다. 서울대 규장각 웹사이트에 올려진 ‘일성록’(日省錄)에서는 사람 인(人)자가 들 입(入)으로, 온전할 전(全)자가 쇠 금(金), 들을 문(聞)이 사이 간(間)으로 잘못 적혀 있는 등 오자(誤字)가 수두룩하게 발견됐다.
모두가 한자·한문을 제대로 몰라 빚어진 일이다. 일상생활에서도 한자어 뜻을 정확히 모르다 보니 나이가 80대인 소설가를 ‘중견작가’라고 부르는 촌극이 빚어진다. 우리 사회에서 날로 한자·한문을 배워야 한다는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녀에게 한자 사교육을 시키는 부모들
주부 신모(42)씨는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둘째 아들(11)에게 1학년 때부터 K학습지를 꾸준히 시키고 있다. 중학교 1학년생인 큰아들(13)도 초등학교 때 같은 학습지로 공부해서 한국어문회의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을 땄다. 신씨는 1일 “큰아들은 신문을 즐겨 읽어 문제가 없는데 둘째는 어휘력이 부족해 한자를 계속 시키고 있다”면서 “중학교 가서 한문과 중국어를 배우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글전용론자들이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가 사교육 부담인데, 공교육에서 한자 공부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다 보니 사교육으로 갈증을 해소하는 상황이 빚어진 셈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 200개 학부모와 교사 52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지난해 1월 교육과학기술부에 보고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학부모의 89.1%, 교사의 77.3%가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에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이 조사는 전직 국무총리 21명이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촉구하는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거세지면서 교과부 의뢰로 이뤄진 것이다. 교육개발원은 보고서에서 한자교육을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혹은 교과서 정책에 포함해 명문화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박찬두 서울 동도중 국어교사는 “한글 전용론자들은 한자를 쓰면 우리말을 잊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한자를 익히면 오히려 아이들의 사고능력은 세 배 이상 늘어난다”면서 “예를 들어 ‘아름다울 미(美)’를 배우면서 아이는 ‘아름답다’와 ‘미’, ‘美’를 한꺼번에 익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순천 효천고 학생들이 복도에 나붙은 한자 지명을 살펴보고 있다. |
대기업 A사 생산현장에서는 보기 드문 사고가 난 적 있다. 직원이 설비 가동을 제때 멈추지 않아 1억5000만원가량의 수리비가 발생한 것이다. 이 직원은 ‘中止’(중지)란 한자를 읽지 못해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교과부도 2010년 직업기초능력평가계획 자료에서 이 같은 사례를 언급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신석호 검정기획팀장은 “부품소재 분야의 일본 의존도가 높고 동북아 경제가 급부상하는 상황에서 한자능력은 기본기로 갖출 필요가 있다”며 “경제5단체가 회원사에 한자시험을 치르라고 권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에서 4년째 중국 관련 업무를 맡은 A과장은 “대부분 영어를 쓰면 업무가 가능하지만 현지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중국어를 익히는 것은 필수”라며 “중국어에 간체자가 많긴 하지만 우리가 배운 번체자를 간소화한 것인 만큼 한자를 많이 알면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신입사원 채용 때 공인 한자능력자격 보유자에게 10∼20점의 가점을 주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두산그룹 등도 선발과정에서 자체 한자시험을 치른다. 동아제약은 문서에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고 승진시험에 한자과목을 포함하는 등 한자 사용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회사다.
이얼싼중국어학원 이영주 부원장은 “한자를 알면 단어 이해력과 파생어 유추 능력까지 생기므로 고급 중국어를 이해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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