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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열외·구타에 앙심 품고 “함께 사고 치고 탈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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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7-07 11:35:06 수정 : 2011-07-07 11: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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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병’ 같은 처지 의기투합
첫번째 전우 사살에 충격 받아
정 이병, 범행 포기하고 도주
양자 진술 엇갈려 의문 여전

해병대 동료 병사 4명을 사살한 김모 상병과 공모한 혐의로 6일 긴급 체포된 정모 이병이 일부 혐의를 시인했다. 하지만 정 이병은 살상 범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조사본부의 김영수 수사2과장에 따르면 지난 4월9일 이 부대에 배치된 정 이병은 스스로 다른 부대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했다. 해병대 해안초소는 군기가 세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신병들로서도 적응기간이 필요해 해병대는 신병들을 모두 ‘관심사병’으로 분류하고 사건, 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 이병이 자대 배치를 받은 지 얼마 안돼 힘들어하던 차에 역시 비슷한 처지의 김 상병이 접근하자 둘이 의기투합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부대원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인 ‘기수열외’를 받던 김 상병이 정 이병에게 “함께 사고치고 탈영하자”고 제안하자 솔깃했을 수 있는 것이다. 군 당국도 정 이병이 김 상병과 범행을 모의한 이유는 부대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이들은 사건 당일인 4일 오전 10시45분 부대원들이 모두 잠자던 시간에 1차로 만나 부대 고가초소 등을 ‘깨부술 것’을 구두로 공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다음 오전 11시15분 재차 범행을 공모했다. 상황실에서 김 상병이 총기를 반출한 것은 오전 11시20분∼35분 사이로 추정됐다. 김 상병은 상근예비역 김모 일병이 퇴근할 때 탄약통 열쇠를 벗어놓은 근무복에 넣어두는 사실을 알고 이를 노렸다. 마침 탄약고 문도 열려 있었다. K2 소총과 실탄, 수류탄을 입수한 김 상병은 즉각 ‘행동’에 돌입했다. 자신은 실탄을 장전해 평소 원한이 있던 부대원들을 사살하고 정 이병에게는 수류탄을 건내주며 “고가초소에 터뜨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눈물의 영결식 6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총기사건으로 숨진 해병대원 4명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해병대장으로 열리고 있다. 동료 해병들이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침울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종덕 기자
두 사람의 부대 파괴 시나리오는 이승렬 상병이 나타나며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 당시 상황병이던 이 상병은 잠을 자지 않고 있었고 11시42분쯤 생활관(내무반) 밖의 공중전화 부스 인근에서 이들과 조우했다. 김 상병은 일이 그르칠 것을 우려해 평소 절친한 사이였던 이 상병에게 그대로 K2 소총을 발사했다.

정 이병은 공중전화 부스 현장에서 이 상병의 출현 등 갑작스런 상황 전개로 범행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 이병은 총격 소리를 들은 고가초소 근무자가 자신을 내려보자 수류탄 투척도 못했다. 김 상병은 정 이병이 들고 있는 수류탄을 넘겨 받아 “같이 죽어버리자”며 안전핀을 뽑았으나, 정 이병은 그 순간 도주했다. 결국 체력단련장 옆 창고에서 김 상병이 혼자 자폭을 시도하다 검거돼 상황은 종료됐다.

김 상병의 총기 사건에서 정 이병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서 김 상병과 정 이병의 진술이 크게 엇갈린다. 김 상병은 조사 과정에서 “정 이병과 함께 총기와 탄약을 절취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정 이병은 이를 일체 부인하고, 자신은 생활관 밖 공중전화 부스 옆에 계속 있었다고만 주장한다.

안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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