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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이 힘겹게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였다. 그레이스 베델이라는 11세 소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턱과 볼에 수염을 기르면 따뜻한 인상을 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링컨 얼굴은 어느 곳 하나 변변한 구석이 없었다. 움푹 들어간 눈, 툭 불거진 볼은 그야말로 제멋대로였다. 링컨은 고심 끝에 수염을 길렀고, 마침내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는 결혼식 전날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너희 부부가 이웃에 대해 특별한 책임감을 느낀다면 세상을 좀더 살기 좋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편지에 감동 받은 빌 게이츠는 자녀에게는 1000만달러만 상속해주고 나머지 재산은 모두 자선사업에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재산의 99%를 빈곤과 질병 퇴치를 위해 기부한다.

편지의 위력은 대단하다. 역사 속 위인들도 십분 활용했다.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은 편지로 자식교육을 대신했다. 18년간의 긴 유배생활로 자식들을 직접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고받은 편지가 자그마치 100통이 넘는다. 편지식 교육 덕택에 두 아들은 당대의 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철인군주 정조는 정적인 영의정 심환지와 비밀편지를 주고받으며 노론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이순신 장군은 조정의 인사들과 끊임없이 서신을 교환했고,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훈육에 힘썼다. 조선 최고의 학자 이황도 자식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자주 붓을 잡았다고 한다.

최근 영국에선 자녀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남긴 부성애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2년 전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폴 플래내건은 암 투병 고통 속에서 다섯 살짜리 아들과 한 살배기 딸에게 아름다운 선물을 준비했다. 피부암 선고를 받자 시한부 9개월 동안 자신의 빈자리를 대신할 편지를 몰래 쓰기 시작했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공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너흰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단다.” 얼마 전 발견된 그의 편지 한 대목이다.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이 있다. 가슴 속에 숨겨둔 글쓴이의 마음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까닭이다. 이메일과 트위터 범람으로 뒷방신세로 전락한 편지가 그리운 요즘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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