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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Focus] 빌라도의 편지

입력 : 2011-12-05 15:04:45 수정 : 2011-12-05 15: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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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오 빌라도(Pontior Pilatos)는 초기 로마시대 유대지방 총독으로 기원 후 26∼36년까지 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 출신으로 유대인들을 탄압하고 폭동을 진압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의 고소로 그에게 잡혀 오자 그리스도의 무죄를 인정하면서도 민중의 강요에 굴복해 그를 죽게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지금도 그리스도 예수를 탄압한 자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날마다 기독교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사도신경을 보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란 구절이 나온다. 사도신경은 믿음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개신교 예배 때마다 암송된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는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척점으로 이해되고 있다.

유대 총독을 마친 그는 사마리아인들의 학살사건 때문에 로마로 소환돼 자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빌라도의 편지’는 그가 유대 총독으로 재임 중 그리스도 예수의 체포와 심문, 처형에 이르기까지를 소상히 기록해 카이사르(시저)에게 보낸 보고서다.

보고서는 카이사르에 대한 빌라도의 문안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최근 수년 동안 유대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다소 흥분되고 격앙된 마음이 읽힌다. 예수의 재판에서는 인간적인 갈등과 고뇌가 엿보이기도 한다.

“각하께 문안드립니다. 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최근 수년동안에 일어난 사건은 너무나 독특한 일이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의 운명까지 변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저는 사건이 일어난 대로 각하께 소상히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최근에 발생한 사건은 모든 다른 신(神)들과는 조화될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중략) 제 귀에 들려온 여러 가지 소문들 중에 특별히 제 주의를 집중시킨 사건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젊은 청년이 갈릴리지방에 나타나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법을 고귀한 열정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미래안(未來眼)이 있었다. 예수가 자유롭게 활동하는 데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으면서도 “제가 생각하기로는 우리 조상의 종교는 예수의 종교로 대치될 것이며 이 숭고한 관용의 종교는 로마제국을 허망하게 붕괴시킬 것”이라고 예견했기 때문이다. 빌라도의 생각대로라면 로마를 위해 예수의 집회를 막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왜 예수를 막지 않았던가. 그것은 빌라도의 다음 고백에서 명백해진다.

“가련한 저는 유대인의 말을 빌자면 하나님의 섭리요 우리의 말대로 하자면 운명의 도구로 쓰여 질 것입니다.”

빌라도의 미래안의 본질은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는’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빌라도를 통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함으로써 인간을 대속( 代贖)하고 구원했기 때문이다.

한편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폭동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몇 안 되는 병력 탓이었다. 그는 가까운 곳에 로마 병력이 주둔한 시리아 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내 100명의 보병과 될 수 있는 데로 많은 기병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래서 성난 군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고래고래 고함쳐도 어쩔 수 없었다.

빌라도는 어떻게 하든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 했다. 그는 “예수는 갈릴리 사람이고 사건은 헤롯의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니 거기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같은 잔수는 수포로 돌아갔다. 다행이 빌라도에게는 장래 운명을 내다보는 부인이 있었다. 부인은 빌라도 앞에 엎드려 울면서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조심하십시오. 저 사람에게 손대지 마십시오. 그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어제밤 저는 환상 중에서 그를 보았습니다. 그는 물 위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 바람의 날개를 타고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중략) 오! 빌라도여, 악(惡)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아내인 제 애원을 듣지 않으신다면 로마 중의원이 받을 저주가 두렵고 카이사르가 당할 괴로움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끝내 예수를 죽음에서 지키지 못했다. 빌라도는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나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보고서를 마무리 했다.

빌라도의 보고서는 한편의 소설 같다. 당시 처해진 정치, 종교적 상황은 물론 자신의 심리까지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빌라도의 보고서 내용을 이용한 연극이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에 의해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28년 경력의 중견 연극배우 박일목 씨가 ‘빌라도의 편지’란 공연명으로 서울 북촌나래홀에서 열연하고 있다. 기존 다른 연극과 달리 극 중 극(play in play) 형태로 색다르게 연출했다. 처음 본 관객들은 도입부에서 익숙지 않은 상황을 맞닥트리는데, 뒤늦게 이해하면서 무릎을 치게 된다.

박일목 씨가 연출은 물론 연기까지 한다. 배우진 씨가 더블캐스팅으로 나온다. 종교적인 기호(嗜好)를 떠나 80분 동안 홀로 극을 이끌어가는 연기파 배우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연극이다. 빌라도의 보고서 속에 있는 고백을 통해 그를 사용한 절대자의 계획을 알게 된다면 그보다 큰 소득은 없을 것이다.

유성호(경제문화평론가ㆍ경제매거진 에콘브레인 편집장 / shy19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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