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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선의 중국 기행] 시간의 풍경을 찾아서 ④ 태산, 하늘에 닿은 높고 큰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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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1-11 23:32:54 수정 : 2012-01-11 23: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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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는 오악 중 세번째 지나지 않고
험하기로는 화산을 따르지 못하고
아름답기론 황산에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 사람들 마음속 가장 높고 큰 산
아득한 옛날부터 드높은 하늘과 광활한 대지 사이에서 생활한 동북아시아 사람들은 하늘에 대한 외경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키워왔다.

하늘을 천지창조의 시작, 민족의 시조가 내려온 곳, 통치자의 권위와 권력과 근원 등으로 간주하는 신화적 세계는 바로 하늘에 대해 동북아시아 사람들이 가졌던 외경심과 호기심의 논리적 산물이다.

그래서 중국인과 한국인들은 하늘 아래에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다(普天之下莫非王土)는 말을 사용했고, 몽골인들은 세계정복에 나서면서 해가 뜨고 지는 곳까지, 다시 말해 ‘텡그리(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곳이 자신들의 땅이라고 선포했다.

중국의 도교는 하늘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사유방식과 현실적인 세계의 길흉화복을 하늘의 세계로 연결시켜 해결하려는 인간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믿음이다.

인간들이 가진 영생불사, 부귀영화, 장수무병에 대한 갈망을 하늘의 세계에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를 사상과, 조형과, 건축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도교이다. 나는 중국인들이 현실세계에 만들어 놓은 구체화된 ‘하늘’의 모습과 그 모습에 깃든 생각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여러 차례 산둥(山東)성 타이안(泰安)에 있는 태산(泰山)을 찾았고 그 일대의 건축물을 둘러보았다.

중국에는 유명한 산이 무수히 많다. 도교의 5대 성산으로 국가에서 제사를 지낸 곳만도 동악대제(東嶽大帝)를 모신 태산 이외에 중악대제를 모신 숭산(嵩山), 서악대제를 모신 화산(華山), 남악대제를 모신 형산(衡山), 북악대제를 모신 항산(恒山)이 있다. 또 불교의 4대 성산으로 꼽히는 오대산(五臺山), 아미산(峨嵋山), 구화산(九華山), 보타산(普陀山)과, 빼어난 자연풍광을 자랑하는 황산(黃山), 천산(天山), 곤륜산(崑崙山), 장백산(長白山)과, 무협영화 등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진 무당산(武當山), 청성산(靑城山) 등이 나름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태산은 오악 중 으뜸이며, 태산을 관장하는 주신이 동악대제이다.
그럼에도 태산만큼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산은 달리 없다.

사실 해발 1545m인 태산은 높이로는 오악(五嶽) 중 세 번째에 지나지 않으며, 험준하기로는 화산을 따르지 못하고, 아름답기로는 황산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태산은 일찍이 사마천(司馬遷)이 사람은 “태산처럼 무겁게도, 터럭처럼 가볍게도(或重於泰山, 或輕於鴻毛)” 죽을 수 있다고 말하고, 모택동이 이 말을 다시 강조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중국 사람들의 마음에서 가장 높고 중요한 산이다. 그것은 태산이 수천 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중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늘’에 닿은 산, ‘하늘’을 모시고 있는 산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누구나 도교적인 믿음을 생활화하고 있고, 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산이 바로 태산이기 때문이다.

태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대묘(岱廟)를 거쳐야 한다. 대묘를 구성하는 수많은 장대한 건축물과 역대 황제들이 세운 집채만 한 비석들과 정원을 장식하는 저명한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의 작품과 서력기원만큼이나 오래된 한백(漢栢: 한나라의 측백나무)과 태산의 주신인 동악대제를 모신 천황전(天?殿)을 보며 하늘을 만나기 위해 태산을 찾았던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발걸음을 북쪽으로 옮겨 관제묘(關帝廟)와 일천문(一天門), 중천문(中天門), 남천문(南天門)에 오르는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인간세계를 벗어난 하늘의 세계에 올라야 한다.

대묘를 찾았던 중국의 황제들은 무수히 많다. 역사상 유명한 황제들만 잠시 열거해 보아도 진의 시황제(始皇帝), 한의 무제(漢武帝)와 광무제(光武帝), 수의 문제(文帝), 당의 고종(高宗)과 측천무후(則天武後)와 현종(玄宗), 송의 진종(眞宗), 청의 강희제(康熙帝)와 건륭제(乾隆帝) 등이 있다.

이들이 대묘를 찾은 것은 봉선의식(封禪儀式)을 거행함으로써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중국인의 사유방식에 따르면 하늘 아래 펼쳐져 있는 세상은 천하(天下)이며,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천자(天子:하늘의 아들)이다. 그래서 하늘에 닿은 태산을 찾아 천제(天帝)로부터 천하를 다스리라는 명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황제 자리에 오른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도교 사원인 대묘가 중국의 4대 고건축물에 해당하는 거대한 모습을 띠게 된 것은 황제들의 이 같은 봉선의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한 나라 때 심은 측백나무로 수령이 2100년이나 된다.
황제들의 비석이 즐비하게 전개되는 대묘의 문루 현판에서 유교문화의 산물인 천하귀인(天下歸仁)이란 글자를 발견한 것은 의외였다. 맹자는 임금은 어질어야 한다는 왕도정치를 주장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흉포하다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학하다 하는데, 흉포하고 잔학한 인간은 한 평민에 지나지 않기에 한 평민인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살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포악무도(暴惡無道)한 하(夏)나라의 걸왕(桀王)과 은(殷)나라의 주왕(紂王) 같은 사람은 임금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에 죽이거나 쫓아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대묘의 현판에 천하귀인(天下歸仁)이라고 써 놓은 것은 아마도 하늘의 명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황제들이 오만방자해지는 것을 에둘러 경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태산에 오르는 길은 높이에 비해 무척 힘들다. 하늘의 세계에 오르는 길이 쉬울 리 없건만 그보다는 거의 수직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돌계단과 계단을 가득 메운 사람들 때문이다.

태산의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문. 사진의 위쪽 아득히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문이다.
그래서 태산에 오르는 사람은 각자의 열망을 안고 태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쉴 줄 알아야 하고, 주위를 살피며 길옆에 이어지는 크고 작은 도교사원들과 천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엄청난 양의 석각(石刻)에 발걸음을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영생불사를 꿈꾸는 중국인들의 열망은 서복(徐福), 동방삭(東方朔) 등 수많은 방사를 만들어냈으며, 방술과 신선사상은 이후 불교를 만나 체계화되면서 도교로 나타났다. 이런 도교는 중국의 역대 황제들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를 뒤바꾼 민중들도 사로잡았다. 지금 중국 정부가 파룬궁(法輪功)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는 것도 황건적, 홍건적, 태평천국, 의화단 등의 봉기에서 보듯 도참사상에 물든 민중조직이 왕조를 무너트린 전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산을 오르는 인파를 보며 저들의 도교적 믿음이 태산이란 이 거대한 산을 정상의 옥황정(玉皇頂)에 이르기까지 온통 바위마다 길흉화복에 대한 도교적 기구(祈求)나 명사들의 시문으로 도배해 놓고 있는 중국의 문화에 대해 간간이 상념에 잠기며 걸어야만 하늘에 오르는 길의 번잡한 짜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늘에 오르는 길은 어렵지만 그 어려운 길을 오르게 만드는 동력은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싶은 갈망이 아니라 모두가 개인의 복락에 대한 타락한 욕망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엄청난 인파 속에서 떨치지 못하며 나는 현실주의자인 중국인들이 빠르고 즐겁게 오르는 길을 느리고 힘들게 걸었다. 

태산의 정상에 펼쳐진 거리가 하늘의 거리임을 알려주고 있는 돌로 만든 패루다.
자주 나타나는 모택동의 시 앞에서 그에 대한 나의 애증을 되돌아보며 걸음을 멈추었고, 두모궁(斗母宮)에 들어가 뜬금없이 서울의 낙성대를 떠올리며 별자리와 인간의 운명을 연관짓는 우리의 발상을 생각했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 의심스러워져서 망인송(望人松)을 바라보며 망연히 앉아 있었다.

태산의 정상은 아스라이 하늘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계단 위에 있다. 드디어 인간세계를 벗어나는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승선방(昇仙坊)을 지나 하늘로 까마득히 치솟은 계단을 허위허위 오르면 인간세상과 하늘세상의 경계선인 남천문(南天門)을 만나게 되고, 그 남천문을 통과하면 하늘의 세계인 천가(天街)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태산은 보통 산이 아니라 하늘에 닿은 산이며, 태산의 정상에 펼쳐져 있는 거리는 인간세상이 아니라 하늘의 세상이고, 그 거리를 다스리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옥황상제이다.

하늘의 거리에서 옥황상제가 거주하는 옥황각(玉皇閣)은 1545m 정상에 위치해 있다. 나는 태산에 오를 때마다 옥황각을 찾았지만 그곳은 늘 인간세상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인간세상에서 온갖 소원을 가지고 올라온 사람들 때문에 하늘의 세계가 낮에는 늘 소란하고 시끄러웠다. 

옥황각의 앞에 있는 태산 정상을 알리는 표시석과 연인들이 헤어지지 말자는 약속의 징표로 걸어 놓은 자물쇠.
줄지어 향불을 피우는 사람들과 철제 난간에 자물쇠를 채우는 청춘남녀들의 대열을 보며 하늘에서의 약속도 저렇게 자물쇠를 채워야만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수천수만 개의 단단한 자물쇠들이 인간들의 방식으로밖에 하늘의 세상을 생각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태산의 밤은 오묘하고 아득하고 행복했다.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는 하늘의 별들과 아득히 산 아래 펼쳐진 인간세상의 불빛들을 내려다보며 신이 휴식하는 신게빈관(神憩賓館)에서 보내는 여름밤은 인간세상과는 달리 참으로 상쾌했다. 태산이 주위의 풍경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절묘한 위치가 인간세상을 떠나 하늘의 세계에 올라와 있다는 공간적 거리감을 생생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대묘의 비석에서 보았던 두보의 “태산의 정상에 오르면 뭇 산들이 작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볼텐데(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란 구절도 점점 사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 밤에는 황제들처럼 옥황상제와 독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것 같은 기분에 잠겨, 아침에는 누구보다 먼저 태산의 일출을 보고 다시 인간세상으로 내려가리라 다짐하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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