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대기업 양보’ 거듭 강조…빵집서 철수 등 성과 가시화
이자 못내는 한계中企 17% 현실은 여전히 도산에 직면 대기업의 공세에 눌려 고사 위기에 처한 중소 상공인들에게도 ‘훈풍’이 불어오는 걸까. 진원지는 선거를 앞두고 서민층 민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정치권이다. 이들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벌 2, 3세들의 무분별한 베이커리 사업 진출이나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전통시장 잠식 문제 등을 정조준하고 있다. ‘약발’은 통했다. 삼성계열사인 보나비가 제과·제빵 시장에서 철수키로 했고, 범 LG가의 아워홈도 순대와 청국장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중소기업계 봄날 오나
“최부자는 흉년에 땅을 사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끝자락에 한 얘기다. 최부자는 400년 동안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경주 최씨 가문을 일컫는 것으로,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 대통령은 “흉년이 들 때면 부자들이 어려워진 소작농들 땅을 사들여 자신의 재산을 키워 나갔지만, 경주 최씨 가문은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는 가훈을 지켜 존경 받았다”고 소개했다. 대기업이 동네 빵집이나 전통시장 등 소상공인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 대통령의 호령에 대기업들은 즉각 반응했다. 삼성계열사인 보나비(브랜드명 아띠제)의 제과·제빵 시장 철수를 끌어냈고,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아들 구자학 회장 일가가 운영하는 아워홈의 순대와 청국장 사업도 종지부를 찍게 했다.
이 대통령은 이달 초 경기 고양의 한우식당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도 백화점 판매수수료 문제를 정면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들은 ‘기름값이 묘하다’고 한 지난해 초를 연상케 한다. 뉘앙스는 오히려 강경해 보인다. 정부는 당시 이 대통령 발언을 계기로 정유사를 압박해 기름값 100원 인하 결정을 끌어냈다.
정부의 ‘대기업 군기잡기’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그룹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중소기업계는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놓치지 않을 태세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삼성계열사의 제빵시장 철수를 환영하면서도 “다른 대기업에도 귀감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압박했다.
앞서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승격시키라고 촉구했고, 동반성장위에 유통·서비스 분야 적합업종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동반성장위의 이익공유제 추진에도 힘을 실어주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실은 여전히 한계 상황
하지만 이 같은 기대에도 중소기업계가 처한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다. 지난해 상반기 전체 중소기업의 17%가량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빚조차 갚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100곳 중 17곳꼴로 3년 내내 금융권 등에서 빌린 부채로 연명한 셈이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분석국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기준 중소기업 가운데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6.6%에 달했다. 금융안정분석국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이자비용)이 3년 연속 100%에 미달한 기업을 한계기업으로 분류했다.
지난해 상반기는 중소기업 938곳 가운데 156곳이 한계기업으로 조사됐다. 작년 상반기 한계기업 비중은 금융안전분석국이 2002년부터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세 번째로 높다.
전문가들은 경영 한계에 이른 중소기업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까지 경기가 좋지 않은 흐름이 이어지면서 중소기업 가운데 한계기업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천종·황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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