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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에 사무치는 쓸쓸함 언어로 보듬다

입력 : 2012-11-16 20:31:43 수정 : 2012-11-16 20: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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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소설집·이승희 시집 출간
“저마다 혼자 건너야 할 강 있어”
날씨나 분위기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하다는 뜻의 ‘을씨년스럽다’라는 형용사가 1년 중 제일 어울리는 때가 바로 지금, 11월이다. 찬바람에 한껏 움츠러든 채 잿빛 낙엽이 나뒹구는 거리를 걸으며 누구나 ‘종말’에 관해 떠올린다. 어차피 태어난 그 순간부터 끝을 향해 치닫는 것. 인생은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다. 그런 뼈에 사무치는 쓸쓸함을 언어로 형상화한 소설집과 시집이 나란히 나왔다.

소설가 이혜경씨는 등장인물의 독백을 통해 “사람은 저마다 혼자 건너야 할 강이 있다”고 말한다.
문학동네 제공
중견 소설가 이혜경(52)씨가 9편의 단편을 묶어 ‘너 없는 그 자리’(문학동네)를 펴냈다. 저자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긴 ‘틈새’(창비)에 이어 6년 만에 내놓은 작품집이다. 1982년 등단 후 장편보다는 단편에 주력해 온 작가의 관록이 오롯이 느껴진다.

표제작 ‘너 없는 그 자리’는 남자에 대한 여자의 눈물겨운 집착을 그린다. 여자의 구애가 부담스러웠던 남자는 “회사에서 케냐로 발령을 받았다”며 떠난다. 얼마 뒤 아프리카에 있어야 할 남자를 서울 시내에서 우연히 목격한 여자의 얼굴에는 이제 표독스러운 광기가 서린다.

‘그리고, 축제’의 주인공은 어릴 적 친척한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다. 오랜만에 마주친 가해자의 웃음 띤 얼굴을 보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여자의 몸은 남편과의 잠자리에서도 좀처럼 열릴 줄 모른다. “그만 잊어”라고 위로하는 남편에게 여자는 “당신이 뭘 알아”라며 쇳소리를 지른다.

‘미남’ 시인 이승희(47)씨의 두 번째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문학동네)는 우울함과 쓸쓸함의 결정체라고 할 만하다.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이경수씨가 “시집을 읽는 내내 쓸쓸한 바람이 불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고 표현할 정도다.

시인 이승희씨는 시집 서두에 “정직하게 울었더니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피어났다”고 적었다.
문학동네 제공
“붉은 맨드라미를 안고 울었던가 그 여름/ 세상 어떤 아름다운 문장도/ 살고 싶지 않다로만 읽히던 때/ 그래 있었지/ 오전과 오후의 거리란 게/ 딱 이승과 저승의 거리와 같다고.”(‘그리운 맨드라미를 위하여’ 중에서)

“패랭이 꽃잎 속으로 조그만 철대문이 열렸다. 하굣길 딸내미인가 싶어 슬그머니 들여다보는데, 바람이 등을 툭 치고 간다. 꽃이 파란 철대문을 소리 내어 닫는다. 등이 서늘하다.”(‘낮술’ 중에서)

끊임없이 엄습하는 자해 충동에 맞서고 낮술로 외로움을 달래는 모습이 측은함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 또한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한 번은 지나쳐야 할 통과의례 아니겠는가. 이미 겪었기에 시인은 이처럼 자신있게 노래할 수 있는 것이리라.

“꽃이 지는 소리처럼 네 무릎가를 적시는 강물의 아침처럼 그렇게 열 손가락 끝이 빨갛게 울어버린 밤이 지나면, 네 몸에서 핀 꽃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네 손톱에 자라는 흰 달이 다시 널 마중 나올 때까지 행복할 거야.”(‘봉숭아 물들다’ 중에서)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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