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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통틀어 북한만큼 지도자의 초상화까지 광적으로 숭배하는 곳은 드물다. 1960년대 말부터 김일성 전 주석의 초상화가 가정과 공공시설·기업소 등 거의 모든 곳에 걸리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초상화를 제대로 모시지 않으면 강제노동 등 처벌을 받게 된다. 화재와 홍수로 집이 타거나 물에 잠겨도 가족, 재산보다 초상화부터 챙겨야 한다. 북한 매체들은 이런 사례를 소개하며 “세계를 감동시켰다”고 칭송하기 바쁘다.

2004년 4월 북한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대규모 열차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관영 매체들에서는 사상자가 1400여명에 달했는데도 사고 현장에서 김 전 주석,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초상화를 챙긴 미담 사례가 넘쳐났다. 이 보도에 따르면 상점 직원 2명이 점심을 먹으러 가다 기업소로 달려가 김씨 부자의 초상화를 품에 안고 나오다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숨졌다. 초·중등학교 교사들, 탁아소 직원들이 건물 붕괴에도 김씨 일가 초상화를 안전한 곳으로 모시거나 품에 안고 숨지기도 했다. 2016년 함경북도 회령의 한 학교에서는 물난리 속에서 초상화를 건지려다 교사와 학생 13명이 숨지는 비극도 벌어졌다.

북한은 이도 모자라 1970년대부터 김일성의 얼굴을 그려 넣은 초상휘장(배지)을 제작, 배포하기 시작했다. 김정일 배지는 1992년 50세 생일 때 만들기 시작했지만, 김정일의 반대로 일부 간부만 달다가 2000년대 들어 일반주민에도 지급됐다.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두 사람의 얼굴을 담은 쌍상배지도 나왔다. 초상휘장은 일반주민부터 최고위층까지 반드시 심장이 위치한 왼쪽 가슴에 달아야 하는 대표적인 우상물로 꼽힌다. 배지를 달지 않다가는 초상화 사례처럼 충성심을 의심받아 경을 치기 일쑤다. 제작 초기에는 당 고위간부와 군 고급장교만 패용했는데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밀매되거나 뇌물로 활용됐고 도난사고까지 끊이지 않았다.

그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간부 전원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얼굴을 그린 초상휘장을 가슴에 달았다. 김정은 배지는 12년 전 제작됐지만, 공식 석상에 등장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정은이 집권한 지 10년을 넘기면서 단독우상화에 가속도가 붙은 듯하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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