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 룩! 룩셈부르크! 아! 아! 아리헨티나(아르헨티나)! … 세상의 중심 위에 서는 그날까지 … 그대와 함께 가리라.” 연세대 대표 응원가 ‘룩셈부르크’의 가사 일부다. 펑크 밴드 크라잉넛이 2006년 발표한 ‘룩셈부르크’와 월드컵 응원곡 ‘승리를 위하여’를 재치있게 잘 엮어 만들었다. 가사만 놓고 보면 룩셈부르크가 변방의 국가라는 느낌을 준다. ‘한국인에게 룩셈부르크의 존재를 확실히 알린 노래’란 평가가 그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룩셈부르크는 면적이 제주도의 두 배쯤 되고 인구는 66만여명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3만달러가 훨씬 넘어 세계 최고 부국이다. 그렇다고 역사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 주변국들이 호시탐탐 그 땅을 노린 탓이다. 19세기에 독립국이 된 뒤로도 안보 불안은 계속됐다. 20세기 들어선 두 차례 세계대전 기간 독일의 점령 통치를 받았으니 약소국의 비애를 톡톡히 겪었다고 하겠다.
한국과 룩셈부르크는 1962년 수교해 60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상호 대사관 설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은 주벨기에 대사가 룩셈부르크를, 룩셈부르크는 주일본 대사가 한국을 각각 겸임했다. 그랬던 두 나라가 지난해 서로의 수도에 상주 대사관을 개설하기로 합의했다. 룩셈부르크 쪽의 진척 속도가 좀 더 빨라 서울 중구 장교동에 벌써 주한 대사관이 들어서 운영을 시작했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를 기념해 오늘부터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룩셈부르크와 85인의 용사들’이란 제목의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 6·25전쟁 당시 룩셈부르크가 한국에 파병한 연인원은 총 85명으로 유엔 참전국 중에서 가장 적다. 그런데 전쟁기념관 측은 “당시 룩셈부르크 인구(약 20만명)와 군대 병력 규모(약 1000명)를 감안하면 22개 참전국 가운데 인구 대비 최다 인원”이라고 설명한다. 더욱이 참전용사 85명 중 두 명은 전사했다. 전시회 개막식에 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이 직접 참석하는 것도 그 희생의 의미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작지만 큰 나라’ 룩셈부르크와의 우정이 영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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