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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美 대선 TV토론의 패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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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30 22:57:07 수정 : 2024-06-30 22: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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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트럼프 진흙탕 비방전
오바마·롬니 품격 토론과 대비
역대급 비호감 대선만 재확인
“진정한 패배자 美 자체” 평가

2012년 10월3일 콜로라도주 덴버대학교. 2012년 미국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밋 롬니 대선후보가 청중의 박수와 환호 속에 토론장에 들어섰다. 첫 TV토론에서 얼굴을 맞댄 두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고, 다른 손으로는 서로의 팔을 격려하듯 두드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 방안이 무엇인지를 묻는 사회자의 첫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사회자와 롬니 후보, 청중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그러고는 토론 당일이 자신의 20번째 결혼기념일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부인 미셸 오바마에게 축하를 건네는 여유를 보였다. 1년 뒤에는 많은 사람 앞에서 결혼기념일을 축하하지 않겠다는 농담을 곁들였고, 청중은 웃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롬니 후보는 대통령과 함께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고 영광이라고 인사했다. 대통령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고 인사하고는, 자신과 함께 있는 이곳이 가장 로맨틱한 장소라고 농담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환하게 웃고, 청중도 웃음을 터뜨렸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TV토론이 끝나고 이튿날인 28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영상 하나가 게시됐다. ‘12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라는 제목의 영상은 게시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2600만명이 시청했다. 47만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5만4000명이 영상을 리트윗했으며, 7000개가 넘는 공감의 댓글이 달렸다.

영상은 오바마와 롬니의 2012년 토론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이 악수하고, 서로에게 존중을 표시하는 장면 다음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토론 장면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유죄 평결을 받은 중범죄자”라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퇴임하자마자 유죄 판결을 받고 중범죄자가 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길고양이 수준의 도덕성을 가졌다”고 비난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는 포르노 스타와 섹스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이 더 골프를 잘 친다고 말다툼을 하고, 서로를 비난하고, 말을 더듬고, 거짓말을 하는 동안 오바마와 롬니가 서로의 공약에 동의를 표시하고, 미국의 경제 및 에너지 정책, 미국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이 교차된다.

78세, 81세의 전·현직 대통령의 TV토론은 추악했다.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흙탕이었다. 전·현직 대통령은 토론장에 들어서면서 악수도, 눈인사도 하지 않았다. 경제정책과 관련한 첫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물려받은 미국의 경제는 자유낙하 중이었다”고 말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이 미국을 도탄에 빠뜨렸다”고 맞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추문 입막음’ 의혹으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격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이 불법 총기 소지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고 맞받는 식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구’(sucker), ‘패배자’(loser), ‘투덜이’(whiner)는 물론이고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2020년 토론과 비교해 두 후보가 상대방의 발언 도중에 끼어들어 방해하거나, 두 사람이 동시에 발언하며 난장판이 됐던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토론이 차분하게 진행됐다는 평가도 있다. 상대방이 발언할 때 마이크를 음소거한 탓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토론에서 지나치게 힘이 없고 쉰 목소리, 잦은 기침, 횡설수설한 답변, 중얼거림, 멍한 표정 등으로 고령리스크에 직면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후보 교체론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토론을 주관한 CNN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90분 토론 동안 30개가 넘는 거짓 주장을 했다고 보도했다.

대선을 4개월 넘게 앞두고 전격적으로 성사된 전·현직 대통령의 TV토론은 11월 대선이 ‘역대급 비호감’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재확인시켰다. 이번 토론의 진정한 패배자는 ‘미국’, ‘미국 유권자’라는 언론매체들의 평가가 틀리지 않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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