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짓누르는 미련처럼…
오만에 대한 첫인상은 비자에서부터 시작됐다. 오만이란 나라는 축구 말고는 알지도 못했었는데,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꽤 오래되었단다. 중동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무비자로 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첫인상은 매우 좋은 편이다. 왜냐하면 육로로 여행을 하다 보면 비자 문제가 제법 번거롭기 때문이다. 국경비자를 내주는 곳은 그나마 다행이나, 미리 비자를 받아야 하는 파키스탄과 이란은 입국 전에 체류한 국가에서 꼭 대사관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여행을 하다 보니 무비자라는 말에서 감동까지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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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즈와의 한 상점이 전시한 형형색색의 도자기가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
오만에 사는 인도인들은 중요한 요소임이 틀림없다. 힘든 일은 인도인이 다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만은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만약 누군가 걸어다닌다면 대부분 인도인이다. 이곳이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래, 다른 곳을 가보자’ 하고 결심한 다음 니즈와(Nizwa)행 버스표를 예매한다.
이란에서 아랍에미리트(UAE)를 거쳐 오만까지 가면서 잦은 이동으로 어깨가 아파온다. 여행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내 짐도 늘어난다. 버리지 못하는 내 고질병 탓이다. 불가피하게 짐을 버려야만 한다. 불필요한 것들인데 버리기 아까워서, 또는 정이 들어서 그냥 들고다닌 것들이다. 이렇게 버려도 배낭은 언제나 다시 꽉 차게 마련이다. 내 인생의 무게처럼 말이다. 버리면 다른 것으로 채워지는 인생의 무게와 비슷한 이치다. 중요한 건 내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채워야 한다는 점이다. 버거워지면 언젠가는 버려야 한다. 그런 것들을 버리지 못하면 미련으로 남아 우리 인생을 짓누르게 된다. 난 내 인생의 짐이 딱 이만큼이길 바란다. 내가 짊어지고 걸어갈 수 있는 무게이길 바란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배낭에는 무엇을 넣어야 할까.
이렇게 짐을 줄이고 나니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니즈와 수크(souk)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쇽’은 ‘수끄(souq)’의 다른 표현인데 우리말로 ‘노천시장’을 뜻한다. 중동에서는 ‘수크’ 하면 보통 ‘시내’의 개념으로 쓰인다고 한다. 2시간 반가량 버스를 타고 가니 니즈와에 도착했다. 메인 수크에서 10분을 정차하는데, 사람들이 다 내리지 않는 버스 분위기와 내 순간의 착오로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다음 정류장은 다른 도시였던 것이다. ‘발라(Bahla)’란 곳에서 내릴 수밖에 없게 됐다. 그곳은 작은 마을로 흙으로 빚은 성과 성곽, 옛 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도 괜찮은 곳이란 생각이 들어 숙박을 할까 했으나, 숙소가 없단다. 모두들 도로 니즈와로 가라고 말해준다. 다행히 봉고처럼 생긴 승합차가 있어 택시요금의 4분의 1 가격으로 다시 니즈와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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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즈와에 있는 옛 성. 대포가 설치된 점으로 미뤄볼 때 과거 요새로 쓰인 듯하다. |
니즈와에 도착해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가격이 맞는 숙소를 찾기는 힘들었다. 니즈와의 외곽지역에 저렴하게 묵을 수 있는 숙소가 있단다. 인도인은 10㎞ 거리라고 했고, 오마니(‘오만 사람’이라는 뜻)는 5㎞쯤 떨어졌다고 했다. 5㎞이든 10㎞이든 이 짐을 들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발라에서 나를 봤다는 사람이 숙소 찾는 것을 도와준다. 그래도 너무 비싼 호텔이다. 여행자가 많이 오는 곳이 아니라서 그렇다. 오만 국경에서 받은 안내책자에 나온 숙소를 발견했다. 그곳이 그나마 저렴하다. 그냥 방만 있는 게 아니라, 부엌과 욕조가 따로 있는 좋은 방이다. 사실 욕조가 내게 좀 필요하긴 했다. 최선의 선택으로 이곳을 숙소로 정한다.
일단 어느 곳에 도착해 숙소가 정해지면 마음이 놓인다. 외딴 곳에 나만의 집이,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들어가 쉴 공간이 생긴 것이다. 여행에서 숙소는 중요한 문제다. 가격도 맞아야 하고, 다음 행선지와의 거리도 따져봐야 하고, 무엇보다 오래 묵을 작정이라면 전망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중 어느 한 가지를 위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다행히 이곳은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 교통비가 별로 안 들었다.
외곽지역에 건물 두 채만 황량하게 서 있어 식당은 선택할 수 없다. 야외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아르헨티나와 다른 어느 나라의 축구시합을 보며 식사를 한다. 맛있는 밥을 하얀색 고양이와 함께 먹었다. 그 하얀 고양이는 더워서 개처럼 입을 벌린 채 헐떡이고 있다. 고기 몇 점을 나눠주니 맛있게 먹는다.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입욕을 즐긴다. 이곳은 찬물이 나오지 않는다. 뜨거워진 물을 식혀줄 쿨러가 없는 탓이다.
다음날은 히치하이킹을 해 수끄에 가본다.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 이 뜨거워진 땅을 대낮에 돌아다니는 건 미친 짓이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제의 그 하얀 고양이처럼 나도 혀를 축 내밀고 걸어다닌다. 성에 올라가 보니 니즈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설치된 대포는 이곳이 무슨 용도였는지 알게 해준다.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녔는데, 찍은 사진이 그만 한순간에 다 날아갔다. 카메라가 갑자기 에러를 일으키며 이곳 성에서 찍은 사진을 없애버린 것이다. 다시 성에 올라가 찍을 수도 있었을까. 다른 곳이라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 지쳐 사진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니즈와는 예전에 오만의 수도였을 만큼 번성한 곳이다. 내륙지방의 중심부이며 오래된 성과 면적이 7600㎡에 이르는 커다란 수끄가 있다. 하지만 니즈와의 날씨는 이 모든 것을 즐길 만큼의 인내심을 주진 않는다. 니즈와는 오래 머물기는 힘든 곳이다. 물론 내가 가장 더운 여름에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샬랄라행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에 갔다. 매표소 직원이 얘기하길, 자리가 없으니 내일 오라고 한다. 짐까지 다 챙겨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는 건 힘든 일이다. 그때 청소하는 인도인이 “기다리면 버스를 탈 수 있다”고 귀띔해준다. 이곳은 버스들이 많이 지나가는 중간지점이기에 오가는 차는 많은데 다만 자리가 없을 뿐이란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탈 수 있겠지.
버스를 기다리다가 히치하이킹을 해볼까 해서 도로로 나갔다. 손을 내밀지 않아도 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내가 “어디 가?”라고 물으면, “어디 가길 원해?”라고 되묻는다. “샬랄라”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말은 “오, 마이 갓”뿐이다. 샬랄라가 히치하이킹을 하기엔 너무 먼 곳인가 보다. 다시 터미널로 가서 버스만 주야장천 기다린다. 이곳에 정차하는 버스마다 가서 물어본다. 그렇게 하기를 몇 시간, 노력한 끝에 결실을 맺는다. 처음에는 ‘만석’이라고 말했던 버스에서 출발하기 바로 전에 타라고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올라타자마자 미리 사온 빵을 먹는다. 그 시간이 저녁이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버스에서 틀어주는 영화는 인도영화다. 인도의 가장 유명한 배우가 나온 걸 보고 알았다. 모든 이들이 초집중을 해서 보니, 나도 보게 되었다. 후반부에서는 슬픈 영화였는지 덩치가 산만 한 아저씨도 훌쩍거리며 울었다.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 울어선 안 된다고 가르치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이들은 감정표현이 솔직하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면 샬랄라겠지, 이름부터 예쁜 샬랄라.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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