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의구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의 ‘모험’을 지켜봤던 시청자도 상당했으리라. 배우 윤은혜는 최근 종영한 MBC 수목극 ‘보고싶다’에서 어린 시절 ‘살인자의 딸’이란 꼬리표로 인한 학대, 성폭행 당한 상처를 지닌 이수연 역을 연기했다. 그는 수연으로 살았던 지난 3개월을 털어놓으며 허심탄회하게 그간의 속내를 털어놨다.
◆ “캐스팅논란, 받아들여야할 숙제”
수연 역은 쉽지 않은 감정 선을 가진 캐릭터인데다 기존 윤은혜의 이미지와 겹쳐지지 않은 까닭에 ‘미스캐스팅’ 논란이 일었다. 밝고 통통 튀는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으로 기억됐던 윤은혜가 감행한 급격한 캐릭터 변화에 기대보다 우려의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윤은혜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제 분량이 나오기 전 캐스팅을 두고 말이 많았는데 받아들여야 하는 숙제로 생각했어요. 그만큼 제가 부족함이 많기 때문에 더 잘해야 했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완벽한 연기자도 힘든 게 주인공인데 의구심을 품는 건 당연해요. 다행히 제가 나오고 나서 좋은 기사가 많아서 홀가분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었어요.”
윤은혜는 캐스팅 논란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논란을 무사히 치러낸 지금, 시청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봐 줬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저에 대해 좀더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나 보자’가 아니라 궁금증 하나로 봐주신다면 용기 내 더 꺼내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동안 제게 맞는, 잘할 수 있는 연기를 주로 보여드리다 보니 낯설어하시는 마음은 이해해요. 그런데 한 두마디 말 때문에 다수의 관점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건 무서워요. 드라마 끝나고 ‘보란 듯 해냈다’가 아니라 이제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됐어요.”
◆ ‘9살 연하’ 유승호와 멜로는…
박유천과 유승호, 상대 배우와의 어울림이 낯설었던 것도 캐스팅 논란을 몰고 온 또 다른 이유였다. 캐스팅을 둘러싼 시청자의 의심 혹은 불만이 수없이 제기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세 사람의 그림은 꽤 어울렸다.
윤은혜는 9살 연하 유승호와 멜로 연기를 펼쳤다. 유승호와의 나이 차가 의식되지는 않았을까.
“한두 살 차라면 노력이라도 했을 텐데 9살 차가 나다보니 오히려 덜 예민해지던걸요? 역할에 빠져들었을 때 시청자가 거부감이나 이질감이 들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승호가 나이대에 비해 성숙해서 잘 조화가 된 것 같아요.”
이어 윤은혜는 박유천, 유승호에 대해 각기 다른 매력을 털어놨다.
“승호는 어릴 때부터 연기해서인지 디테일이 좋고 집중력이 강해요.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바로 해내는데 상대배우로서는 안정적으로 연기호흡을 맞출 수 있는 장점이 돼죠. 너무 연기를 잘해서 연기 톤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유천이는 저처럼 가수 출신이다 보니 틀이 없고 의외성이 있어서 생각지 못한 모습이 나오죠. 오랜 연기경력에서 오는 요령은 없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배우마다 특징이 있는 듯해요.”
박유천과 유승호, 훈훈한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윤은혜에게 여성 팬들의 시샘어린 시선이 쏟아지기도 했다. 윤은혜는 ‘어장 관리녀’라는 일부 팬의 반응에 대해 “승호가 뽀뽀하려는데 왜 싫다고 하시지만 막상 뽀뽀를 받아들여도 싫어하실 거면서…”라며 재치 있게 응수해 웃음을 줬다.
◆ 무조건 ‘해피엔딩’ 원했다
‘보고싶다’는 수연과 정우(박유천 분)가 결혼하고, 복수와 광기에 집착했던 형준(유승호 분)은 총상을 입은 뒤 모든 기억과 학습 능력을 잃은 채 백지의 삶을 살게 되는 결말을 맞았다. 여러 예상 결말이 나왔지만 윤은혜가 바랐던 결말은 “수연이 행복해져야 한다”였다. 매회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수연이 마지막엔 웃으며 행복하길 바랐다.
“무조건 해피엔딩을 원했어요. 비극으로 끝나면 수연이 너무 불쌍한 아이가 되잖아요. 정우와 형준 둘 중 누구라도 잘못되면 수연이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어요. 형준이 죽으면 수연이 정우와 이어지더라도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엔딩이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나쁜 의미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힘든 일을 겪은 분들이 저로 인해 긍정과 위로를 주고 싶었어요.”
◆ '가수 출신 배우' 편견은 지나갔다
걸그룹 ‘베이비복스’ 출신이자 털털한 매력으로 예능프로그램 종횡무진 누비던 윤은혜는 어느덧 ‘배우’라는 타이틀이 익숙하다. 그간 드라마 ‘궁’ ‘커피프린스 1호점’ ‘포도밭 그 사나이’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과 흥행성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윤은혜를 떠올릴 때 가수이자 예능프로그램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팬들이 많다.
윤은혜가 꽤 성공적인 연기 행보를 보여 왔음에도 대중의 물음표가 따라붙는 건 ‘가수 출신 배우’라는 편견 때문은 아닐까. 윤은혜는 “가수 출신 배우에 대한 편견은 이미 지난 것 같다”며 “역할로 보여 지는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수 출신 연기자라는 편견이 물론 힘들었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가수로서 더 멋진 꼬리표를 달지 못한 게 오히려 창피하게 생각될 만큼 가수 이미지를 부끄럽게 생각지 않아요. 대중이 제게 갖는 편견은 제가 가진 이미지 때문인 거지 ‘가수 출신’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가수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고, ‘엑스맨’ 때도 가수가 아닌 여자 예능인으로서 비춰졌으니까요.”
윤은혜는 ‘배움’과 ‘도전’이라는 잣대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는 흥행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을 받은 작품에 대해 “국내에서 흥행 못했더라도 해외에서 흥행한 케이스도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윤은혜의 진가를 확인시킨 다수의 작품이 있었기에 지금의 윤은혜가 있다. 작품 선택기준을 묻는 질문에 “흥행도 고려한다”는 윤은혜의 솔직한 답이 돌아왔다.
“차기작을 선택할 때 흥행도 조금 생각하긴 해요. 하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도전해보고 싶고, 뭔가 얻을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려고 했죠. 가장 우선은 제가 시청자 입장에서 보고 싶은 작품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사진=더하우스컴퍼니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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