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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 〈18〉 어린왕자와 사막여우가 만난 곳, 이집트 바하리야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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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3-15 04:59:30 수정 : 2013-03-15 04: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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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만난 어린왕자의 친구 “반갑다” 새벽에 일어나 짐을 챙겨 어제 꾸려진 팀과 함께 숙소를 나선다. 사막에 가는 것이다. 투르고만 버스터미널에서 다섯 시간 반을 달리면 도착하는 곳이 서부사막의 바하리야 오아시스다. 특이하게 이곳에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업체가 있었다. 한국인 여성인데 이집트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도 나처럼 이집트 여행을 왔다가 사랑에 빠져 이곳에 머물고 있단다. 그 사랑은 이집트의 사막이기도 하고 또 한 남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히잡을 쓰는 등 이슬람 규율을 따라야만 했단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우리가 무엇을 결정할 때에는 저울질하는 게 아니구나. 무심코 바라본 풍경과 자기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감정에 그냥 이끌리는 거구나.’

사막에도 길이 있을까. 이 이정표는 나에게 어디로 가라고 말하는 걸까.
그녀의 남편과 남편 친구가 각각 운전하는 두 대의 지프에 나눠 타고 우리 팀은 움직였다. 내가 탄 차는 남편 친구가 운전했는데 모험심과 장난기가 가득한 친구였다. 그래서 우리는 사막에서 정해진 코스를 벗어난 질주하는 ‘오프로드’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어느 곳에선가 멈췄다. ‘콜드 스프링’이라고 부르는 작은 야외목욕탕 같은 곳이었다. 너무 더웠기에 아무 생각 없이 힘차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또다시 길을 벗어나 사막을 신나게 달렸다. 사막의 굴곡을 하나하나 능선 타듯 달리니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었다. 무서우면서 짜릿한 기분으로 그렇게 한참을 달린다. 이윽고 차를 멈춘 곳은 석양을 보기 좋은 장소다. 그곳에서 석양이 질 때까지 샌드보드를 타면서 사막을 실컷 즐겼다.

사막의 석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대로 얼어붙어서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가끔은 사진 찍는 것도 잊은 채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 해가 질 때쯤 사막 모래들은 찬란하게 빛난다. 그것은 마치 금가루라도 되는 양 빛이 나는 것이다. 모래인지 금인지, 아니면 실제로는 금인데 그동안 모래로 지낸 것인지 정체가 궁금하다. 너무 찬란한 빛 때문에 누구나 헷갈리는 것이다. 물론 주위 사람들만 헷갈리는 것이지 자기 자신은 분명히 알고 있으리라.

더 어두워지기 전에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한단다. 다시 이동해 한적한 곳에 캠프를 차린다. 양탄자로 한쪽 바람을 막는 벽을 만들고 바닥에 천을 깔면 그것이 우리가 임시로 지내야 할 집이 된다. 지붕을 막지 않는 것은 별을 보기 위해서다. 또 한쪽 벽만 막는 것은 사막여우 때문일 것이다. 그곳은 사막여우의 집이란다. 우리가 잠깐 와서 쪽방을 빌려 쓰는 것이라 최대한 사막여우의 ‘편의’를 봐줘야만 한다. 물이 귀한 사막이라서 한쪽에는 물을 준비해둬야 한다. 음식보다는 물을 더 찾는 사막여우는 물을 먹기 위해 자주 왔다 갔다 했다.

양탄자로 벽을 치고 천을 바닥에 깔아 사막 한가운데에 임시 숙소를 만들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들어 만찬을 즐긴다. 그러고는 모닥불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역시 빠질 수 없는 것은 물담배다. 몽환적인 물담배 연기가 우리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일행 간에 오가는 이야기들은 새삼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동질성을 확인시켜준다. 대화를 통해 나의 갈증도 서서히 해소된다. 그렇게 사람끼리 하는 이야기들이 끝나고 이제부터는 사막과 이야기를 한다. 적막할 만큼 고요한 사막은 평소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도 듣게끔 해준다. 까만 밤하늘의 별들과 스치는 바람소리, 그리고 사막여우가 움직이는 소리가 느껴진다.

사막여우는 불 가까이 왔다. 그것은 동화 속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려는 것만 같았다.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 마치 나도 어린왕자가 된 것처럼 마냥 그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아주 작은 몸집에 비해 커다란 귀, 조그맣고 뾰족한 얼굴에 작은 체구, 그리고 두툼한 꼬리가 몹시 매력적이다. 그런 작고 마른 몸에 부유할 만큼 풍성한 꼬리가 달려 있다니, 참 인상적이다.

동화 속에서 어린왕자의 친구로 나오는 사막여우. 수줍은 성격 탓에 사람이 모두 잠든 밤에만 몰래 나타난다.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온 세상이 빛을 받는다. 달은 태양의 빛과는 또 다른 밝음이 있다. 사물들을 더 집중해서 보게 한다. 은은한 빛의 세상을 가꾼다. 달빛에 의해 생긴 사막의 모래 그림자는 이곳이 사막임을 분명히 말해준다. 거기에 ‘버섯돌’이라 불리는 독특한 돌들의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의 빛을 관찰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곡을 연주하는 소리가 빛줄기 사이로 지나간다. 북 치는 소리와 사람들의 노래가 어우러져 온 세상으로 퍼져가고 있었다. 그 소리가 바위 근처를 맴돌다가 사막으로 흩어져 별에게 가버린다. 이집트 사람들의 연주가 끝나고 나니 작은 불씨로 구운 고구마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모닥불 곁에 앉아 졸기 시작하다가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나를 깨웠다. 그건 아주 작은 사막여우였다. 놈이 나를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잠에서 깼지만, 난 일어나지 않았다. 슬며시 눈만 뜨고 사막여우를 지켜봤다. 내가 일어나면 그 작은 사막여우가 놀라 어쩔 줄 몰라할까봐 그냥 조용히 있었다. 사막여우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자기네 집을 차지한 낯선 불청객들을 살피고 있었다. 겁이 많은 사막여우는 사람들이 다 잠든 뒤에야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 사막여우가 있어서 더 아름다운 사막이다. 이란에서부터 사막이 눈에 익숙해진 터라 이집트 사막에 대한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사막은 더 이상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사막여우라는 친구는 서부사막의 바하리야를 더욱더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덥기만 하던 사막도 새벽에는 추위가 찾아온다. 다시 해가 떠오르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더워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내 주변에 나 있는 사막여우의 작은 발자국을 따라가 본다.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호기심에 이끌려 끝없는 그의 행적을 뒤따르는 것이다. 사막만큼이나 끝없이 돌아다녔나보다. ‘그 작은 사막여우는 어디서 잘까’, ‘이 사막에서 밥은 뭘 먹나’, ‘무엇을 하며 놀까’ 등 온갖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사막여우의 발자국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은 버섯바위. 오른쪽의 작은 바위는 병아리처럼 생겼다.
아침을 먹은 뒤 사막을 더 돌아다녔다. 사막에 우뚝 솟은 버섯바위는 말 그대로 버섯 같다. ‘왜 이런 게 굳이 사막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외계인의 흔적이라는 착각까지 든다. 늘 ‘어떻게 이렇게 신기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결론은 꼭 그렇게 된다. 하얀 그 바위는 햇볕에 말라 하얗게 된 것만 같다. 그래도 이 바위가 그늘을 만들어주니, 사막여우가 와서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군데 더 들른 사막에는 꽃 모양으로 생긴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화산재라는데 신기할 만큼 꽃과 흡사한 모양이다. 얼마나 빨리 식었기에 이렇게 퍼지는 모양이 그대로 남았을까. 아마도 사막이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태양의 열기가 정점에 도달했을 때 차 안에는 에어컨 장치가 없었다. 시속 140㎞로 달리니 창문을 열 수도 없다. 그래도 모두들 잘 버텨서 무사히 카이로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뜻하지 않게 온 이집트 다음의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큰 루트를 생각해보면 아직은 중동을 더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방에 걸어둔 세계지도 한 장을 떼어 가져왔는데, 루트를 짤 때 참 유용하다. 세계지도를 펼친 다음 내가 걸어온 길을 표시하고, 앞으로 갈 길을 손가락으로 그려보면 된다. 이집트에서 요르단·시리아를 거쳐 터키로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나의 길이다.

사막의 색깔은 언제나 따뜻한 느낌을 줘 좋다. 물론 낮에는 너무 뜨거워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집트에서 요르단 국경을 넘기 위해선 뉴웨이바라는 도시로 가야 한다. 뉴웨이바는 국경도시라 그냥 거치는 곳이고, 거기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다합을 먼저 찾기로 한다. 다합행 버스를 알아보니 밤에 출발하는데 10시간 정도 걸린단다. 표를 끊고 숙소를 체크아웃한 뒤 바하리야 오아시스에 같이 갔던 사람들이 묵는 숙소로 간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야기하면서 즐거웠던 시간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gri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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