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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단일민족 정체성을 흔들어 놓은 사건은 6·25전쟁이었다. 중국, 몽골, 일본 등 수많은 외침을 받은 우리 민족의 피에 다른 민족 DNA가 섞이지 않을 방도는 없었다. 다만 혼혈인의 얼굴이 한국인과 별반 다르지 않아 사회문제로 발전하지 않았을 뿐이다.

1950년 6·25전쟁 발발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군이 대거 들어오면서 ‘양공주’와의 사이에서 외모와 피부색이 확연히 다른 약 10만명의 혼혈인이 태어났다. 순수 혈통을 고집하는 사회분위기 탓에 이들이 겪어야 했던 냉대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튀기’라는 비아냥은 혼혈인의 가슴을 헤집어 놓는 비수로 다가왔다.

베트남전쟁 때 양산된 ‘라이따이한’은 우리가 가해자가 된 케이스다. 1964∼1973년 파병된 한국군, 기술자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은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라이따이한은 적군의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버려진 핏줄이라는 모멸감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또 얼마나 컸겠는가.

또 다른 한국계 혼혈인 코피노(Kopino)는 엄마가 필리핀 여성이다. 1만여명의 코피노는 여행과 해외출장, 어학연수로 필리핀을 방문한 한국 남성이 씨를 뿌리고 거두지 않은 경우다. 필리핀 국민이 낙태를 금기시하는 가톨릭 신자이고 한국 남성은 피임을 원치 않아 코피노가 많이 태어났다고 한다.

코피노의 아빠 중에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의 한국 유학생도 많다.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허튼짓만 한 것을 부모는 알고 있을까. 코피노 6명이 아버지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온다고 한다. 코피노의 공식적인 아버지 찾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코피노들은 아버지를 찾으면 친자 인지·양육비 지원 소송까지 벌일 예정이다. 아버지 사진과 여권번호, 혼인증명서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밤잠 설칠 남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가정까지 깨질 수 있는 사안이니 걱정이 얼마나 많겠는가.

코피노의 아버지 찾기가 한국사회의 잘못된 성문화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정부도 현지 실태조사와 대책을 서둘러야 할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 핏줄이 외국에서 2등 국민으로 차별받으며 살게 놔둘 작정인가.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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