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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중동] 〈33〉모로코 토드라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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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8-22 22:39:32 수정 : 2013-08-23 1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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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절벽 바위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흙길 ‘한량 친구’와 쉬엄쉬엄 걸어가며 즐겨
우르르 지나가는 귀여운 염소 떼에 웃음 … 척박한 삶도, 환경도 모든 것이 인.샬.라
토드라는 가는 길조차 아름답다. 아틀라스산맥에서 이어지는 곳이 사하라사막이다. 아직까지도 사하라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따뜻한 햇살을 품었지만 그 안에는 가시 같은 모래를 품은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팅히르에서 토드라까지는 승합차를 타고 간다. 그 차는 이곳의 교통수단이다. 많은 사람들이 낑겨 앉아 가는 것은 기본이고,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만 어디서든 세워 준다. 그 차를 타고 토드라 가는 길목에서 내려서 걸어간다. 물론 마을에 투어가 있기 때문에 투어차를 타고 오면 걸어가지 않고도 토드라를 다 돌아볼 수도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삶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나는 걸어가는 길을 택했다. 그 이유는 차로 휙 지나가면서 놓치는 것들을 걸어가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걸어가다가 배고프면 움막 같은 곳에서 파는 무언가를 먹고, 땀이 나서 더우면 흐르는 물에 세수를 하면 된다. 절벽에 매달려서 암벽등반을 하는, 점같이 보이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지나가는 길에 풀 하나를 뜯어서 동물 모양도 만들 수 있다. 이런 많은 일들을 놓치지 않고 갈 수 있기 때문에 걸어서 가는 것이다.

처음 도착한 토드라에서 흙길을 얼마 걷지 않아서 계곡다운 절벽의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흘러 내리는 물이 고인 연못에 손을 담그니 정신이 번쩍 날 만큼 차가웠다. 맑은 물은 또 어디론가 흘러간다. 몇몇 상점들에서 무언가를 팔기도 한다. 염색천인데 직접 물을 들였단다. 바람에 흩날리는 천들이 하나의 작품 같다. 나의 동행자 마흐메드는 역시나 가이드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이곳에 놀러 온 것이 맞다. 이곳 출신인 마흐메드는 가는 곳마다 친구들이 많다. 친구를 만나면 게임도 한 판 하고, 차도 한 잔 마셔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쉬엄쉬엄 걸어갔다. 한나절을 걸어가니 이제는 저 멀리 보이는 산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외길이다. 가끔 투어차들이 지나가면서 흙먼지를 날릴 뿐이었다. 움막 같은 집이 아닌 이번에는 제대로 된 카페를 찾았다. 나무로 돌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자연과 조화롭게 맞아떨어졌다. 그곳에는 악기가 몇 개 놓여있길래 나는 몇 번 두드려봤다. 그러자 어디선가 펑하고 나타난 ‘지니’처럼 마흐메드와 그곳 주인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모로코의 음악은 재미있다. 아프리카와 아랍의 사이에 놓여 있는 느낌이다. 아프리카의 리듬들이 타악기를 통해 전해지자, 그곳에 재미난 선율이 더해진다. 토드라에 퍼진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마흐메드는 한량인 게 분명해졌다. 

염소들은 염소치기를 뒤에 이끌고 걸어나간다.
나는 그곳에서 그림 몇 장을 더 그리고 차를 마시면서 쉬었다. 더 가면 돌아오는 길은 어두워져서 힘들 것 같다는 마흐메드의 말에 따라 이곳에서 돌아 마을로 향했다. 길거리에 테이블 두 개를 가져다 놓고 떳떳하게 카페라고 써 있는 곳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곳에서는 즉석 음식만 가능했다. 작은 버너를 가져다 놓고 계란프라이와 빵 등을 준다. 허기진 배를 해결하고 나니, 또다시 걸을 만해졌다. 이때 지나가는 염소떼들이 나를 웃게 해 줬다. 염소는 눈동자가 독특하다. 자세히 보면 동그란 눈안에 네모난 눈동자가 있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 멍한 눈은 너무 귀엽다. 또한 염소는 입모양도 재미있다. 가끔은 염소들이 나에게 웃어주는 것만 같다. 염소들은 시냇물의 다리도 잘 건넌다. 아슬하게 놓인 나무다리도, 띄엄띄엄 놓인 징검다리도 빠지지 않고 잘 건넌다. 염소떼를 모는 이는 염소들 뒤에서 막대기 하나 들고 천천히 걸어온다. 그러면서도 염소들이 딴길로 새면 귀신같이 알아낸다. 그 많은 염소들의 숫자를 알고 있는 듯하다. 무리떼를 이탈한 염소 한 마리를 찾아내서 다시 합류시키는 걸 보면 염소 하나하나를 다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루 종일 염소들과 걷고, 다음날이면 또 염소들과 걸어가는 염소치기는 마냥 걷는다. 내가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나를 채찍질해주는 것은 바람과 햇살이다. 햇살이 이끄는 데로 걸어가고, 바람이 등 떠밀어주는 데로 걸어가는 나는 이곳의 염소처럼 웃으며 걸어간다. 

토드라계곡에 저녁 노을이 닿기 전에 마을로 들어왔다. 나는 내일 갈 곳을 정한 걸까.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한 가지 마음 한쪽에 둔 곳이 있긴 하다. 이곳을 올 때 버스에서 스쳐지나갔던 작은 마을이다. 그곳이 어딘지는 모른다. 분명 아틀라스의 일부분일 텐데, 어디인지는 모르는 마을이다. 그곳을 마음 한쪽에 둔 이유는 작은 마을 뒤로 보이는 풍경 때문이었다. 우뚝 솟은 평지처럼 길게 이어지는 협곡이었다. 토드라에서 나가는 길은 그곳 한 길뿐이니, 분명 버스는 그곳을 지나칠 것이다. 버스표를 어디까지 끊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래도 한번은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분명치 않은 행선지가 내일 내가 갈 곳이다. 만약에 그곳을 못 간다면 마라케쉬로 가면 되는 것이었다. 

토드라 협곡은 계속 걸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아침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겨 나선다. 새벽에 내린 비는 아프리카 땅을 촉촉이 적셔준다. 사막의 먼지를 살짝 날려 줄 정도밖에는 안 되지만 오랜만에 내린 비는 반갑다. 모스크로 기도를 하러 가는 사람들과 엇갈리면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따뜻한 민트차를 마신다. 아침으로 오믈렛과 빵을 시켰는데, 이제는 포크를 주지 않는 것에 익숙하다. 빵 조각에 손으로 계란을 꾹꾹 눌러 싸서 먹는다. 인도에서는 커리도 밥과 함께 손으로 먹었는데 빵으로 먹는 건 양호한 식사다. 

아랍인이 아닌, 흑인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땅에 있지만 아랍인들이 많기 때문에 아프리카 흑인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는 공격적인 영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의 직업을 묻길래, 대답하고는 나도 그의 직업을 물어봤다. 예전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었다고 말하는데, 짧은 나의 말에 그는 멈칫했다. ‘지금은?’이라고 되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없다고 말하면서 뒤에 흩날리는 말로 ‘인샬라’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들은 직업이 없는 것도 인샬라이고, 직업을 구하는 것도 인샬라이며, 지금 버스가 오지 않는 것도 인샬라이다. 또한 버스가 오는 것도 인샬라이다. 인.샬.라. 언젠가는 버스가 오니까.

내 친구 마흐메드는 어디서든 친구를 만나는 한량이었다.
도착한 버스를 타는데, 이건 더러워도 너무 더럽다. 더러운 현지버스를 많이 탔지만 이건 유난히 더럽다. 신문지를 깔고 의자에 겨우 앉는다. 여기저기서 몰려든 사람들이 버스에 다 타니, 서서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만원버스가 되었다. 그렇게 출발한 버스는 나도 알지 못하는 나의 행선지를 향한다. 나는 창밖을 계속 주시하면서 내려야 할 곳을 찾고 있었다. 한참을 가니 그때 보았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더 가면 딱 그 풍경이 있는 곳이라 여겨서 마을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한 정거장만 더가면 그곳도 마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착오가 한 시간을 넘게 걷게 만들고야 말았다. 힘겹게 걸어서 다시 마을에 도착해서 보니, 내가 그때 봤던 마을이 맞았다. 여관 같은 작은 호텔이 두 곳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두 군데 다 돌아다녀보고 한 곳을 정해 짐을 놓고 나왔다. 일단, 이 마을의 이름부터 정확히 알아야만 했다.

‘엘 켈라 음구라(El Kelaa M’Gouna)’, 이 긴 이름이 이 마을 이름이란다. 현지 발음으로는 더 악센트와 숨기는 발음이 더해져서 어렵다. 마을 이름도 알았으니, 이제는 마을 구경을 가봐야지.

버스안에서 나를 매료시켰던 그 풍경안으로 직접 들어가보는 것이다. 기대되는 마을이다.

강주미 여행작가 ‘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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