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설경구(45)가 올해만 네 편의 출연작으로 진정한 다작(多作) 배우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타워’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개봉해 연초까지 관객과 만난 데 이어, 지난 7월초 개봉한 ‘감시자들’, 9월4일 개봉한 ‘스파이’, 그리고 내달 2일 개봉을 앞둔 ‘소원’까지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한 해 극장가를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스코어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타워(감독 김지훈)는 전국 518만명, 감시자들(감독 조의석/김병서)은 550만명이 봤다. 두 작품의 관객수만 합쳐도 벌써 1000만을 넘어섰다. 여기에 추석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스파이(감독 이승준)는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의 야심작 소원의 성적도 기대해볼 만하다.
설경구의 이 같은 행보는 ‘박하사탕’(1999)으로 무명시절을 거두고, 소위 ‘충무로 블루칩’으로 우뚝 섰던 2000년대 초반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하루 아침에 뭔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에 놀랐고, ‘내가 왜 출연했나’ 싶은 작품에 출연한 것도 사실이다. 그 정도로 갑자기 바빠졌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 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송강호와 쌍벽을 이루는 충무로 연기파 ‘대세’로 활동해왔다. 영화 포스터 전면에 자신의 얼굴을 내걸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들 중 한 명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
‘공공의 적’(2002) ‘오아시스’(2002) ‘실미도’(2003) ‘그놈 목소리’(2007) ‘강철중-공공의 적 1-1’(2008), ‘해운대’(2009)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작품에서 주연으로 활약했고, 이 중 ‘1000만 클럽’에 가입한 영화만 해도 실미도와 해운대 두 편이나 된다. 스파이의 성적에 따라 관객 총 합산 6000만 배우 대열에 합류하는 것도 머지 않아 보인다.
그의 다작 행보에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관객들이 볼 때는 ‘다작’인 게 맞지만, 사실 설경구씨는 일 년에 한 편 꼴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면서 “지난해 촬영을 끝낸 감시자들의 후반작업이 길어진 데다, 그 이전에 촬영한 스파이는 감독 교체 등의 이슈로 개봉이 늦춰졌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이 몰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상영 중인 스파이는 추석 시즌에 온 가족이 볼 만한 오락 첩보영화로 관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트루 라이즈’(1994)를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평범한 회사원을 가장한 채 살아가는 첩보원 철수(설경구 분), 남편 철수의 정체도 모른 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엄청난 사건에 휘말려든 아내 영희(문소리 분)의 이야기를 코미디·멜로·액션 등 다양하게 버무려내 관객 호응도가 높다.
스파이에서 찌질하면서도 우직하고, 때로는 샤프한 첩보원 역할을 멋들어지게 소화해낸 설경구는 개봉을 앞둔 소원(감독 이준익)에서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이미지 변신을 꾀한다. 아동성범죄로 짓밟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삶의 향기 짙게 묻어나는 인물을 보여줄 예정. 소원은 2008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으며 아동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조두순 사건’을 바탕으로 해, 적지 않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설경구의 다음 행보에도 기대가 모아진다. 그는 당초 이번 하반기 이창동 감독이 ‘시’(2010) 이후 메가폰을 잡게 될 차기작을 촬영할 예정이었으나, 촬영이 내년쯤으로 미뤄지면서 공백이 생기게 됐다.
소속사는 “좋은 작품에 꾸준히 출연할 거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마 좋은 시나리오가 오면 쉬지 않고 영화 촬영을 하게 될 것 같고, 그렇지 않다면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향후 계획에 대해 언급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