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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 <37> 서사하라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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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9-26 21:16:16 수정 : 2013-09-27 10: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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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지에도 생명의 기운 꿈틀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이유는 대부분 자연 때문이다. 동물원에서만 보던 야생동물들을 대자연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다. 하지만 그건 적도를 기준으로 남쪽의 우림지역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서아프리카는 왜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일까.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북쪽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 모로코이다. 그래서 북아프리카의 나라들에 속한다. 서아프리카라고 하면 흔히들 여행자에게 인기가 없는 나라들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남쪽을 가장 많이 여행하며, 동부와 북부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여행하는 편이다.


그러면 서아프리카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아프리카는 사하라사막의 모래바람으로 뒤덮여 있으며, 대자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행의 기본적인 문제들 즉 언어 소통이나 환전, 금전 거래, 신변안전, 의식주 등 이런 모든 것들이 어려운 지역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곳이기에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하지만 도전정신이 강한 여행자들에게는 항상 일순위로 꼽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하면 자연인데, 볼 만한 자연 풍경도 없고 고생을 사서 해야 하는 서아프리카를 여행의 마지막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그 당시에 나는 이런 사실조차 몰랐으며, 어떤 낌새도 인지하지 못했다. 단순히 모로코에서 서아프리카를 지나서 남쪽으로 내려갈 생각뿐이었다. 알지 못하고 갈 때는 두려움이 없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는 모로코를 지나서 서사하라로 갔다. 서사하라는 독립은 선언했지만 많은 나라들의 이권 개입과 복잡한 정세로 승인받지 못해 온전한 독립국가가 아닌 상태였다. 모로코 접경을 지날 때 나는 이곳이 국경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어디서든 여권검사를 하는 것은 외국인인 나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려도 나 혼자만 여권검사를 받아야 했다. 지도를 보면 서사하라와 모로코는 다른 나라 경계선과 다르게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물론 모로코에서 구입한 지도에는 경계선조차 없다. 이런 모호한 나라가 아직까지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서사하라의 지위는 애매하다.

서사하라의 길에는 낙타만 다닐 뿐이다.
만약에 서사하라가 자원이 풍부한 나라였다면, 어디서든 강력한 이권다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사하라는 석탄과 일부 자원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볼모지다. 사하라의 엄청난 모래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개발도 힘들다. 실제로 서사하라에는 몇 개의 도시만이 존재하며, 도로들은 모래로 유실된 곳이 많다. 현재는 영유권을 주장하는 모로코의 많은 재정적 도움과 내정간섭을 받고 있지만 독립국가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티베트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서사하라에 도착하니, 분주한 건설 현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부분 도시 기반시설들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거주하는 사람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대서양을 길게 끼고 있는 서사하라는 풍부한 해양자원의 수출도 강구해볼 만도 할 텐데, 인력이 부족해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대지의 대부분은 농업에 적합하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99%가 불모지로 분류되어 있다. 안타까운 나라다.

수도인 엘아이운(아랍명 라이운)과 다클라가 그나마 여행자와 인구가 많은 곳으로 꼽힌다. 나는 아가디르에서 내려야 했으나 그곳을 지나쳐서 이네즈간에서 내렸다. 아가디르에 다시 가서 숙소를 잡을까도 했다. 그러나 다클라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생각을 접었다. 이네즈간에서 시간을 보낸 뒤 야간에 그 버스를 타기로 했다. 모로코의 버스인 CTM이 있어서 이동에는 불편이 없었다. 표를 끊고 짐을 부치고 시내를 구경하러 나왔다.

염소타진을 먹는데 쇠고기 맛이 나는 듯했다. 이제는 쇠고기 맛조차도 잊어버렸나보다. 타진을 파는 식당 주인이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 나를 보고는 반가워한다. 사진을 더 찍어 달라는 요청을 기분 좋게 들어주었다. 그러니 서툰 영어로 간절하게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는 주인아저씨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주소를 적어주는데 이메일이 아닌 진짜 이곳 주소를 적어주었다. 친절하게 그 종이를 받고는 생각했다. 이렇게 받은 수많은 종이들은 내 일기장에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데 나는 이것을 어떻게 다 보내줄 수 있을까.

다클라에서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유럽인들의 모습
예전에 한국여행을 할 때는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었다. 그때 사진을 현상하면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진들을 따로 뽑았었다. 보내주려고 했지만 그때는 받았던 주소를 찾지 못했었다. 아직도 내 서랍에는 그때 만났던 사람들의 사진이 잔뜩 쌓여 있다. 이번 여행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그런데 이메일도 아닌 집주소를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것 또한 나의 짐으로 남겨둔다.

친절한 무슬림들의 인사를 받으며 거리를 다닌다. 한 바퀴 돌고 돌아와 다시 타진 식당에서 테(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부려본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나보다. 여기저기서 인사를 건네 왔다.

스무 시간은 타고 가야 하는 버스에서 옆자리 사람은 매우 중요하다. 이번에 만나게 된 사람은 코를 찌르는 발냄새만 빼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발냄새가 너무 지독해 다른 좋은 점을 전부 삼켜버린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라이운에서 내린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라이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버스는 오래 정차했다. 깨끗한 거리와 건물들이 잘사는 도시처럼 보였다. 수도답게 발전된 곳이었다. 물론 여기저기서 보수공사를 하고 있지만 애초 계획도시로 개발된 곳이었다. 붉은색 흙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들도 부지런하게 일을 한다. 모로코와는 다른 느낌이다. 전통 무슬림 복장을 한 사람들과 완벽하게 현대적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섞여 있다. 이곳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이제부터는 말 그대로 불모지를 달리기 시작한다. 안개가 짙게 깔린 길을 달릴 때 나는 그 안개 속을 한없이 지켜봤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마주 오는 차가 있는지 길이 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는 안개 속을 달렸다. 차는 무심하게 잘 가고 있었다. 표지판 하나,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지체 없이 가고 있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맑은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내가 가는 길도 그렇게 가다보면 맑아질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나 혼자만 내려서 하는 의례적인 여권검사는 여전히 가는 곳마다 계속됐다. 목적지가 어디냐는 질문을 계속 받았다. 나의 대답은 ‘모리타니’였다. 그렇다. 나는 모리타니를 향해 가고 있었다. 시간은 길어서, 끝이 없는 듯 펼쳐져 있었다. 끝없이 길게 뻗은 길을 가는 내게 목적지를 물어보는 그들이 고마웠다. 그 물음 때문에 목적지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정신이 흐려진 내게 자주 목적지를 상기시켰다.

그렇게 도착한 다클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지도를 보면 대서양 바다에 꼬리처럼 작게 튀어 나와 있는 곳이 다클라다. 유럽인들이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곳이다. 다클라는 모리타니와 가깝다는 증거로 아프리카계 흑인들을 내세웠다. 아랍인들과 지내다 이곳에 오니 흑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흑인들이 무섭도록 달려들어 호텔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다행히 버스에서 친해진 아랍인과 함께 호텔을 찾아 보기로 했다. 유럽 여행자들로 인해 높아진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이곳에서 바로 모리타니로 가는 버스를 찾을 수가 없었고 부득이하게 숙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한 시간 동안 돌아다녀 적당한 숙소를 찾아냈다. 일단은 다클라에서 모리타니 가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고, 긴 이동시간에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울 시간이 필요했다. 다클라는 그러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바다에서 휴식을 취하며 서사하라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의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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