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문제… 치료·자립 체계적 시스템 구축해야”
19만 발달장애인과 50만명이 넘는 발달장애인 가족이 고통받고 있다. 이들을 위한 사회적 관심은 냉랭하고, 정부 정책은 겉돌고 있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덜게 하려면 어떤 정책들이 나와야 하는지를 전문가와 발달장애인 부모가 함께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좌담에는 박인용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과 최복천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 이복실 한국장애인개발원 박사, 김성천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치훈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실장이 참여했다. 이들은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를 위해서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발달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대 형성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담회는 발달장애인의 현황과 지원제도 등에 대해 자유발언 형식으로 이뤄졌으며,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서 진행됐다.
(왼쪽부터)박인용 서울지부장, 최복천 센터장, 이복실 박사, 김성천 교수, 김치훈 정책실장 |
▲최복천 센터장=발달장애아동이 성장하면서 욕구도 달라진다. 생애주기별로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한데, 그런 측면의 고려가 없다. 전환교육이 이뤄지면서 사전에 어려움을 차단해주면 가족이 유지될 수 있으나 현재는 그 책임이 온전히 가족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위기가 찾아온다. 발달장애인은 시각과 청각 등 감각장애인에 비해 많은 돌봄이 필요하고, 그만큼 경제적 비용도 배가된다. 그동안 시행해온 장애인 정책들은 신체적·감각적 장애인 중심이다. 성폭력을 당한 장애여성 중 70%가 지적장애여성일 만큼 인권 측면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복실 박사=프랑스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발달장애에 대한 집중 연구계획을 세우고 2700억원을 투자했다. 의료와 사회적 돌봄, 대국민인식개선 등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은 전체 장애 유형 중 발달장애가 의사소통과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이 많고 생애주기별로 고강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 발달장애인지원법을 따로 마련했다. 우리 정부는 그러한 인식이 부족하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부족한 수준이다. 정부와 국민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발달장애인을 지원할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김성천 교수=국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다. 공익광고 등을 통해 발달장애 문제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모든 장애인이 충분한 보호를 받고 있지는 않지만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김치훈 실장=발달장애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도 관건이다. 발달장애아동 조기 선별을 위해 장애 선별검사 비용까지 교육기관이 부담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보건소와 어린이집, 유치원 등 협력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발달장애라고 진단하고 판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조산아와 저체중 아동 등 발달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큰 대상,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연구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최복천 센터장=발달장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빨리 대처를 할 수 있다. 의심이 가는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진단에 있어 중요하다. 이러한 진단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키우는 것도 급선무다. 부모에게 대처 방안을 어떻게 알리느냐도 중요하다. 부모는 자폐증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정보와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 각 지역의 발달장애인센터 등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가능한 한 빨리 아는 것이 아이의 가용 능력을 키우고 가족과 사회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김치훈 실장=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도 각기 욕구가 다른 발달장애인에 맞춰 융통성 있게 이뤄져야 한다. 활동보조인과 자립생활운동 등이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에 기존 제도를 바탕에 깔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예 깨버려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구분하는 등 점차 세분화해야 한다. 서비스가 많다는 것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성인발달장애인이 14만명인데, 활동보조인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1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늘어놓은 접시 숫자만 보고 우리나라도 장애인 복지가 풍부해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담긴 양은 굉장히 적기 때문에 발달장애인들까지 나눠 먹기가 어렵다.
▲이복실 박사=제공되는 서비스의 총량 문제도 있지만 서비스의 질이 문제다. 장애 특성에 맞춰 지원을 분류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아동과 성인을 구분하고 성인 중에서도 신체장애와 정신장애를 구분하자는 논의가 있다. 구심점이 필요하다. 어디에 가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허브 역할이 필요하다.
▲김성천 교수=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시설 중심’이다. 개별적인 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부가 시설을 지어놓으면 시설이 알아서 지역사회에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서울에서도 지역에 따라 시설이 없는 곳도 있고, 지방은 더 드문드문 있다. 분포도 다르다. 그 시설도 체계적이지 않다. 서로 연계가 잘 되지 않는다. 이용자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 전달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중복지원도 이뤄지고, 정작 필요한 사람들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발달장애인의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조정해 연결해줄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박인용 지부장=최근 발달장애인 5만여명이 거주시설에 살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성인발달장애인을 위한 주된 복지형태는 결국 ‘시설화’인 것이다. 5만명의 성인장애인이 1년에 몇백명이라도 자립을 해야 하는데, 개별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돼 있지 않아 시설을 나와도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국가적인 시책으로 ‘탈시설화’를 추진해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역사회 기반 삶을 추구해야 한다. 아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발달장애아동이 통합학교에 다니면 불편하고 힘들기 때문에 분리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지독한 편견이다. 그들과 교감하고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재정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시설화를 한다고 하지만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절감된다. 시설화가 2배 이상의 돈이 더 든다는 연구도 있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당장 재정 소요는 있더라도 결국은 비용을 경감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김성천 교수=이웃에 살던 발달장애아동 2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아이가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가 18세가 돼 돌아왔다. 그 아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한국에 있었던 아이는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아이가 자립할 수 있도록 엄마와 떼어놓고 다양한 교육과 자원봉사 등의 관리를 한다. 참고해야 한다.
▲김치훈 실장=아동기의 교육과 복지의 법률적 틀은 만들어졌다. 열심히 교육하고 치료하는 것은 성인이 됐을 때 최대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성인이 되는 순간 다시 단절된다. 그동안 아이 손 붙잡고 치료실과 병원 다니던 것이 다 물거품 되는 일이다. 발달장애인지원법안 내용의 초점이 성인에 맞춰져 있는 이유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발달장애인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발달장애인지원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정부가 예산이 들지 않는 방향으로 법을 제정하려는 모양새다. 장기적인 대응을 할 것인지, 아니면 일단 미흡하더라도 법안을 만들어 놓는 것에 무게를 실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복실 박사=성인발달장애인과 관련해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이미 자기 결정에 대한 문제를 특수교육 분야에서 연구했다. 발달장애아동이 성인이 됐을 때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의견을 내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 연구한 뒤 사회복지로 연결했다. 우리는 사회복지에 대한 연구는 이뤄지고 있지만 특수교육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김치훈 실장=현재 일반학교에 있는 특수학급은 교육의 수준과 질이 떨어진다. 특수교사와 일반교사의 협력을 통해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의 통합교육으로 나가야 한다. 현재 장애아동에 대한 교육이 국가 교육과정의 틀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이 문제다. 장애학생에게 1년에 수학을 몇 시간 이상 가르쳐야 한다는 식의 교육은 맞지 않는다. 장애학생에게 맞는 교육과정이 개발되고 학교 안과 지역사회를 넘나들면서 경험중심과 생활중심으로 커리큘럼이 짜여야 한다.
▲김성천 교수=최근 발달장애아동이 가족을 더 친밀하게 했다는 긍정적 효과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다. 발달장애인을 둘러싼 어두운 면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역량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됐으면 한다. 장애인이 살기 좋은 국가는 비장애인이 더욱 살기 좋은 국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정리=박영준·권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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