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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아들이 “아빠는 남을 베려는 마음 있어, 없어?” 하고 묻는다. 선뜻 답변을 못하고 “베려야? 배려야? 발음을 정확히 해 봐” 하고 되물었더니, “역시 아빤 안 낚이네!” 하고 빙그레 웃는다. 의미는 전혀 다르지만 발음이 비슷한 ‘배려’와 ‘베려’를 가지고 말장난을 친 것이다.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행위를, 베려는 칼이나 낫으로 뭔가를 끊거나 자르거나 가르는 행위를 일컫는다. 모음 한 글자 차이지만 뜻은 정반대다. ‘님’과 ‘남’도 마찬가지. 우리말의 묘미다.

배려는 내 생각과 입장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입장을 먼저 헤아려 행동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중화장실에서 한참 줄을 서 있는데 자기보다 더 급해 보이는 사람에게 순서를 양보했다면 배려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먼저 가려는 사람에게 한쪽 통로를 내주는 것도 배려다. 주차장에서 실내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차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것도 이웃을 위한 따뜻한 배려다.

하지만 교무실에 잠입해 기말고사 시험지를 미리 빼내 친구들에게 나눠줬다면? 그건 배려가 아니라 범죄다. 요즘 중고생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로 ‘관종’이다. 관심 받고 싶어 안달 난 종자란 뜻이다. 정치권에 종종 관종이 나타난다. 북한의 장성택 숙청과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같은 여론몰이라고 주장하는 전직 장관, 북방한계선(NLL)에서 군사훈련하면 북한이 빵 쏘는 건 당연하다는 가톨릭 신부, 내년 지방선거 때 대선을 다시 치르자는 국회의원은 우리 시대의 관종들이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메난드로스는 “마음을 자극하는 유일한 사랑의 영약은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라고 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과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이 베풀어주는 배려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영국 속담에 귀가 솔깃해진다. 춘원 이광수는 “배려는 미덕이다. 군자에게 필요 불가결한 미덕이다”라고 했다. 가수 박지윤은 희트곡 ‘목격자’에서 “이별 이유 중에 최고를 준비한 너의 뜻하지 않은 배려 속에 안녕”이라고 노래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에서 우리 사회가 더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력이 달랑 한 장밖에 남지 않은 2013년, 남을 그만 베고 제대로 배려해 보자.

조정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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