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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6〉 개화기 용어 ‘신사유람단’과 ‘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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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26 21:30:33 수정 : 2014-03-17 13: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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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히트곡 ‘강남스타일’의 후속 ‘젠틀맨’은 독한 영어 욕설 ‘마더 퍼커(mother fucker)’의 발음과 의미를 비튼, 말하자면 ‘싸이 브랜드 비트’다. “I’m a mother father gentleman.” 알랑가 모르겠지만, 화끈한 말놀이다. ‘아리까리’하게 비난 피하는 묘수, ‘정치적’이기도 하다. 더 히트했다면 그 영어 욕설이 아예 ‘마더 파더’로 바뀔 수도 있었겠다.

조선 말기, 매우 어렵던 시기에 나라의 지휘권을 잡은 고종은 정치적 센스가 있는 임금으로도 평가된다. ‘신사유람단’이라는 명칭과 그 운영에 있어서도 그 점 두드러진다. 신사(紳士)들이 유람(遊覽)을 한다고? 어디? 일본! 젠틀맨(신사)을 앞세운 정치 쇼였던가. 1881년 1월의 일이었다.

청나라냐 일본이냐, 말들 많았다. 그때까지 우리 ‘형님’은 중국 땅의 주도 세력이었다. 큰집[大] 섬기는[事], 사대주의다. 작은 나라의 생존 방식이자 외교 이념이었다. 때론 그 힘이나 문화에 압도당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본을 보려는(보고 배우려는) 대규모 외교사절단을 보낸 것이다. 중국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한테 ‘배신을 때린’ 것이다. 중국도 함께.

조선시대 군인이 입었던 정복. 허리의 띠[신(紳)]는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이다. 요즘 신사들은 그 띠처럼 넥타이를 매고 늘어뜨려 권위를 표시할까?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싸이가 ‘마더 파더 젠틀맨’이란 가사 속에 감쪽같이 욕설을 감춰놓은 것처럼, 고종도 그 ‘젠틀맨’에다 정치적인 장치를 숨겼다. 일본에 보내는 사절단의 이름을 ‘아리까리’하게 붙여 세상의 주목을 피하는 장치로 활용한 것이다.

사실 고종이 이 이름을 지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나중에 그 이름은 공공연히 나돌았다. 당시 고종은 이 외교사절단에 공식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대표도 없이 몇 개 갈래로 나눠 팀장을 임명하고 수행원을 붙였다. 일설(一說)에는 그 ‘신사’들마저 배를 타기 전에는 자기네 임무를 몰랐다고 한다.

배를 타는 곳까지 그들은 부산 옆 동래(東萊)지역 암행어사 신분이었다. 배를 탈 무렵에야 우리 측은 일본과 관련 교섭을 시작했다. 그 젠틀맨들은 그렇게 정치적이었다. 우리 측에도, 일본 측에도 그 존재가 ‘있는 그대로’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고종의 정치력이다. 아마 그는 “야호!”를 외치지 않았을까? 싸이 식으로는, ‘알랑가 몰라!’였겠지.

가수 싸이가 ‘젠틀맨’을 부르며 춤을 추고 있다. 젠틀맨의 한국어 표현에 해당하는 ‘신사(紳士)’는 조선 말기 신사유람단을 통해 우리 사회에 첫선을 보였다.
냅다 두들겨 맞은 놈은 한참이 지나도 때린 놈이 무서운 법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 하던가? 지금까지도 실은 그 녀석 생각하기도 싫다. 그 무렵 일본이 얼마나 잘나가는 나라였는지, 왜 그 ‘도둑 빤치(펀치)’에 하릴없이 코피 터지고 말았던지, 진지한 생각이 없었던 이유겠다. 아직 조선통신사 시절로 한일(韓日) 관계를 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시의 국제적 힘의 균형에 관해 사람들 상당수가 짐작조차 못하고 황당해하는 부분이다. 아무리 그렇지만 일본에 당하다니? 그러나 일본은 러시아도 중국도 때려눕혔다. 천벌(天罰)이랄 수 있는 원자폭탄에 쓰러져 미국의 애완견으로 명찰 바꿔 달기는 했지만 당시 신흥강국 일본의 힘은, 우리로선,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기는 했다. 우리는 일본을 잘 모른다.

훨씬 전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는, 우리의 아쉬운 바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덜 떨어진 그들 왜인들의 청(請)을 받아들여 한 수 가르쳐주는 취지의 외교사절이었다. 이와 달리 이번엔 우리가 조정(朝廷)의 젊은 엘리트들을 보내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그들이 이룩하고 있다고 (국제적으로도) 소문이 자자한 그 성과’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었다.

신사유람단 일원이었던 박정양(1841∼1904). 조선 말기 오늘날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내각총리대신에 올라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말하자면 ‘선진지(先進地) 견학’이었다. 조준영(趙準永) 박정양(朴定陽) 엄세영(嚴世永) 강문형(姜文馨) 조병직(趙秉稷) 민종묵(閔種默) 이헌영(李憲永) 심상학(沈相學) 홍영식(洪英植) 어윤중(魚允中) 이원회(李元會) 김용원(金鏞元) 등 12명이 팀장이 돼 각 분야를 열심히 둘러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일본 정계의 거물로 떠오르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도 만났다. 그는 아시아 침략에 나서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헤이그특사 사건을 트집 잡아 고종을 퇴위시켰다. 왜인들로부터는 대단한 평가를 받는 모양인데, 전쟁범죄의 원흉(元兇)이다. 그 죄과(罪過)를 물어 대한의용군사령관 안중근(安重根·1879∼1910) 장군은 하얼빈에서 그를 총살했다.

이 ‘신사’분들은 여비도 조선국의 출장비를 썼고, 숙박도 민간 시설을 이용했다. 야욕의 발톱을 숨긴 일본은 일행을 극히 환대하였으나 우리는 짐짓 이를 외면하는 듯한 모양새를 유지했다. 돌아올 때도 대부분 암행어사 신분으로 상경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소위 친일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는 일부 사학계의 시각(視角)은 주목할 대목이다.

대한의용군사령관 안중근 장군.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했다.
패키지 관광, 즉 신사들이 유람하는 모임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학계는 신사유람단 이름 대신에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이라고 바꿔 부르기로 했다. 요즘 배운 사람들은 새 이름으로 기억하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왕의 신사유람단 이름 때문에 혼란을 겪는 이들이 퍽 많다. ‘조사’는 당시 그들의 공식 직함으로, 조정에서 파견했다는 뜻이 담겼다.

조선조 말기에 이렇게 ‘신사’라는 낱말이 우리 사회에 선을 보였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동아시아에 등장한 시점과 겹치는 이 무렵, 영어 단어 ‘젠틀맨’도 우리에게 왔다.

원래 신사(紳士)는 명(明·1368∼1644)나라와 청(淸·1636∼1912)나라 때 지위나 부(富) 등 ‘좀 있는 사람들’의 명칭이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송(宋·960∼1279)나라 때의 사대부(士大夫)와 흡사한 개념이었다. 양반이나 선비 등 우리 사회 기득권 계층의 명칭과도 비교될 만한 이름인 것이다.

고종의 노림수로 우리말에 새롭게 등장한 이 낱말은 자연스럽게 영어 젠틀맨의 짝꿍이 됐다. 상투적이기까지 한 서구의 의전(儀典) 언어 ‘레이디스 앤드 젠틀맨’의 번역어로 공인되다시피 했다. 다만 그 순서는 바뀐 채, 아직도 ‘신사·숙녀 여러분’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원래 순서로 빨리 바뀌고 있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장 ceo@citinature.com

■사족(蛇足)

어원학으로 풀어보자. 신사는 ‘큰 띠’라는 훈(訓·뜻)의 신(紳)과 사대부 사(士)자의 합체, ‘큰 띠를 맨 사대부’라는 속뜻으로 ‘점잖고 예의바르며 교양 있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북송(北宋) 때의 문장가 구양수의 글, 큰 띠 드리우고 홀을 바르게 한다는 수신정홀(垂紳正笏)에서 그 모양을 그려볼 수 있다. 신(紳)은 예복에서 허리에 매고 나머지 부분을 드리워 권위의 상징으로 삼은 띠, 홀(笏)은 벼슬아치가 예복에 갖추어 손에 쥐던 막대다.

선비 사(士)자와 비슷한 도끼 그림에서 기원한 왕(王)자가 새겨진 중국 고대 청동기. 코뿔소 모양의 향로로 추정되는 이 그릇의 명문(銘文)에 모두 4개의 王자가 있다.
지금도 복식(服飾)과 관련한 예법은 엄연하고도 까다롭지만, 역사에서 챙겨볼 수 있는 권위 또는 권력의 상징으로서의 옷과 장식은 매우 복잡하다. 몸에 맨 신(紳)에 홀(笏)을 바로 꽂은 모양은 벼슬아치의 상징이다. 이 신(紳)에 사(士)를 붙여 자연스럽게 고관대작을 가리키는 말로 썼다. 지금 신사는 영어의 ‘젠틀맨(gentleman)’과 동의어다.

도끼 그림이 선비 사(士) 글자로 변환된 것을 보여주는 그림. 중국 문자학자 이락의 저 ‘한자정해’에 삽입된 그림이다.
사(士)를 ‘하나[일(一)] 배우면 열[십(十)] 깨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푸는 이들이 상당수인데, 이는 갑골문 발견 이전, 글자의 외양(外樣)만으로 짐작한 뜻이다. 문자의 새벽을 살던 상(商)나라 황하 유역 사람들은 도끼의 모양으로 글자를 만들었다. 처벌에 쓰는 도끼는 권력의 상징, 그것을 가진 사람의 뜻으로 확대[인신(引伸)]되어 쓰이게 됐다고 문자학은 푼다.

왕(王)은 그보다 더 큰 도끼의 그림으로 士와 ‘출생의 비밀’이 비슷하다. 그 그림글자는 제후(諸侯)의 뜻으로 인신(引伸)됐다. 상당수가 어원으로 알고 있는, 하늘[一]과 땅[一]과 사람[一]을 꿰뚫어 다스리는 지배자라는 풀이는 좀 억지스럽다. 기억하기는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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