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6·25전쟁사의 공백인 ‘비정규군’ 공인 의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8240부대 자료 수집을 위해 지난해 6∼7월 미 특수전사령부를 방문, 3차례 접촉을 가졌다. 이후 미 측의 소장품 공개와 사료실 및 수장고 개방으로 8240부대 참전자 증언록의 존재 사실을 확인하고는 협상을 통해 어렵사리 이를 확보했다.
또 8240부대의 훈련 및 작전과 관련된 사진 48매와 그밖에 유인물, 공문, 기록물, 휘장 등 사진 300여장도 함께 입수했다. 이 자료들은 미 특수전사령부가 6·25전쟁 당시 유격전사를 공식 발간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선별, 검증한 것들이다. 국내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들 자료는 부대원들의 교육훈련 모습과 검열, 작전준비에 관한 사진들과 장교임명장 및 감사장을 비롯해 자체 발간한 ‘소식지’까지 포함됐다. 그간 베일에 가려졌던 8240부대의 존재와 활약상을 증언하는 것들이어서 향후 해당 부대원들의 보상 관련 입법 과정에서 주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군사편찬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입수한 자료를 보면 이들이 정식 부대마크를 가지고 있었으며, 장교임명장까지 수여한 것으로 나와 있어 상당히 체계적인 군대의 모습을 갖추고 6·25전쟁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이들의 활동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6·25전쟁사와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울프팩2부대 소속으로 1·4 후퇴 이후 자생적 치안대에서 유격부대로 변신한 박상준, 이근성, 최병태 유격대원의 증언은 미 육군 공적 역사서 작성에 포함되고 군사학 교재로 사용될 수 있을 정도의 의미를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편찬연구소 관계자는 “미군은 북한군의 기습 남침에 의한 6·25전쟁 발발, 중공군의 개입 등 계속된 정보 판단 실패로 큰 질타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인간정보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면서 “8240부대는 미군이 인간정보 분야의 혁명적 발전을 이룬 계기가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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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참전 기록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지난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페이엣빌에 위치한 미군 특수전사령부 역사실에서 발굴한 8240부대 관련 사진들. 왼쪽부터 8240부대의 소년 유격대원이 사격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 부대원들이 노획한 중공군의 총기를 살펴보는 모습, 해안침투에 사용된 민간 어선에 올라탄 부대원의 모습.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제공 |
6·25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진 1952년 1월. 8240부대원 97명을 실은 미 공군 C-47 수송기 한 대가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여의도비행장을 이륙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비밀임무는 평양 북쪽 내륙에 불시착한 5명의 미군 조종사를 찾기 위해서였다.
침투한 지 3개월이 지날 무렵 부대원들은 미군 조종사 5명이 북한군에 생포돼 감금돼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무전으로 현재 인원으로는 적과 싸우기에는 중과부적이라며 미군에 지원을 요청했다. 조종사 생환에 실낱같은 희망을 건 미 극동사령부는 그해 5월 추가로 73명의 8240부대원을 다시 적진 깊숙히 침투시키는 모험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후 170명의 부대원들은 중공군과의 교전에서 전원이 전사했다. 작전명 ‘블루 드래건’(Blue Dragon). 이 작전은 미군이 지난 60년동안 보관하던 대외비 자료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다.
구출작전에 투입된 8240부대원들이 생환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은 미군과 한국군 모두 알고 있었다. 투철한 반공정신과 북한에 대한 적개심으로 뭉친 탈북 난민과 북한 출신 포로들의 용기에 기댄 무모한 시도라고 할 수도 있다. 성공한 작전도 있었다. 52년 봄. 중공군의 참전으로 딜레마에 빠진 이승만 대통령은 밴 플리트 미8군사령관에게 긴급메시지를 보내 “화천발전소만은 반드시 탈환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던 미 10군단은 항공정찰을 통해 화천발전소 인근에 중공군 포병부대가 버티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화천발전소 탈환을 앞두고 8240부대에 속한 켈로부대원들에게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5명의 결사대가 화천 인근지역에 공중 침투, “중공군들의 수송차량이 화천을 향해 분주히 왕래하고 있지만 포탄을 수송하는 차량은 전혀 없다”고 보고했다. 나무 대포를 세워두고 방심하고 있던 중공군 진지는 미군의 기습공격으로 쑥대밭이 됐고 마침내 화천발전소를 탈환할 수 있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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