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수영 밤엔 낚시… 배낭여행자도 지친 몸 쉬어 아침 일찍 출발해 비냘레스에서 바라데로로 향한다. 바라데로는 20km 넘게 길게 뻗은 해변으로 유명한 쿠바의 휴양지다. 카리브의 깨끗한 바다와 끝이 안 보이는 해변에 미국인이 개발해 놓은 휴양도시인데, 지금은 미국인만 못 오게 된 곳이다. 미국 부자들이 휴양을 즐기러 오며 별장으로 지어 놓은 많은 집들이 리조트나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바라데로는 마이애미에서 가까워서 미국 시대극을 보면 “바라데로 가서 즐기자”라는 대사가 나올 정도로 유명한 미국의 휴양지였다. 하지만 쿠바와 미국이 적대관계가 되면서부터는 미국인만이 아닌 모두의 관광지가 되었다. 배낭여행을 하는 여행자도 지친 몸을 쉬기에 적당한 곳이다. 비싼 리조트와 호텔뿐만 아니라 작은 숙소도 많아 배낭여행자들도 쉬면서 즐기기에 그만이다.
바라데로는 비냘레스에서 동북쪽으로 300km가량 떨어져 있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도 오후 2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비냘레스에서 바라데로로 가는 버스편은 요일별로 다르다. 매일 운행되는 버스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면 아바나로 가서 환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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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데로의 바다는 늘 꿈꿔온 카리브해의 에메랄드빛이다. |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감동에 인색해질 때가 있다. 다른 곳과 비교하며 현재 머무는 곳에서 감동을 느끼지 못하곤 한다. 그렇게 되면 별나라를 가지 않는 한, 더 큰 감동을 받기는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항상 되뇐다.
‘작은 일에도 웃을 줄 알고, 작은 일에도 감동받을 줄 알고,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알기를.’
내가 본 이 장면이 내 평생 처음 보는 순간이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즐기고 싶다.
바라데로에 도착하기 전까지 버스는 두 번을 세워 줬다. 한 번은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 였고, 또 한 번은 승객 한 명이 멀미로 버스 안에서 심한 구토를 했기 때문이었다. 버스 운전사는 차를 멈추고 걸레와 양동이를 가지고 와서 깨끗하게 청소했다. 운전사는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차를 치웠다. 사람들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단지 버스 안내원으로 같이 탄 남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나의 빈축을 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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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수영하는 사람들이 떠나고 나니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는 사람이 나타났다. |
바라데로에 도착했으나,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랐다. 길게 뻗어 있는 해변은 꼬리처럼 육지에서 튀어 나와 있다. 20km나 되는 꼬리인 셈이다. 한번 잘못 내리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터였다. 호텔이나 리조트 말고 사람이 사는 마을에 내리고 싶다고 하니, 운전사가 일러줬다. 그곳에 내리니,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상가도 보이는 것이 맞게 내린 듯했다. 이제부터 ‘카사’(caca de particula· 일반집으로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를 찾기만 하면 됐다. 걸어가면서 카사 표시가 있는 집에 들어가면 된다. 몇 군데 가봤지만, 방이 다 없단다. 20km나 되는 거리에 어디든 내가 묵을 수 있는 곳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더 가본다. 카사 주인들은 다른 집을 기꺼이 같이 찾아봐 준다.
그들은 친절하게도 도로변에서는 보이지 않던 안쪽 집까지 다 뒤져서 한 군데를 찾아냈다. 집이 비좁긴 하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제일 좋은 건 마당에서 바다가 보인다는 점이다. 짐을 풀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바로 바다로 향한다. 모래는 태양빛에 하얗게 빛나고, 바다는 파란색을 잃어 버렸다. 바다를 누가 파란색이라고 했나 싶다. 이 바다는 무슨 색일까. 짧은 문장 실력으로는 이 바다 빛깔을 표현하기 어렵다. 투명하고 티 하나 없이 맑은 물에 초록색, 파란색 물감을 휘저어 놓은 듯하다. 파랗다기보다는 초록빛에 가깝고 초록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투명해서 초록빛마저 빛을 잃는다. 눈부신 바다가 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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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가 아닌 일반 가정집이 모여 있는 마을에는 저렴한 숙소가 많다. |
긴 꼬리처럼 늘어선 바라데로의 해변 건너편도 바다지만, 그곳은 다른 모습이다. 폭은 1km도 안 되기에 걸어서 가본다. 가는 길에 현지 식당에 들렀다. 2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먹는 돼지고기 스테이크는 훌륭하다. 노란 볶음밥에 샐러드와 과일까지 곁들여준다. 이곳 역시 일반 가정집에서 운영한다. 모두 맛있기는 한데, 카리브 섬의 음식들은 내 입맛에는 짜다. 생과일 주스까지 마시고 나온다. 반대편 바다에는 놀이기구 몇 개와 볼링장 등이 있는 유원지가 있다. 그 바다는 깊은 바다라서 수영보다는 낚시를 즐긴다.
쿠바 바라데로 밤하늘에는 어느새 달이 반이나 차 올랐다. 달은 여기서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묵는 카사 앞바다는 가끔씩 들어오는 고장난 가로등 하나가 있을 뿐이다. 점점 어두워지니 멀리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불빛을 따라서 걸어간다. 불빛이 환한 곳은 리조트였다.
그 불빛 덕에 안전이 확보된 바닷가에 앉아 파도와 하늘을 바라본다. 고요한 공기를 깨는 소리는 파도뿐이다. 쿠바 여행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다시 한번 되짚어 보면서 밤을 보낸다. 행복을 찾아가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항상 주위에 행복이 있는데, 그것을 보기가 어려울 뿐이다. 검은 파도에서 낮에 봤던 초록빛을 찾으려면 주의깊게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구름 사이에서 별을 찾는 일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어떤 선입견 없이 바라만 보면 행복이 보일 텐데, 그것이 어려웠나 보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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