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연상케 하는 강남역사거리의 지티타워 이스트(GT Tower East) 빌딩의 설계자는 현대건축의 상징으로도 불리는 네덜란드 항구도시 로테르담의 건축가 그룹 ‘컨소트 아키텍트(Consort Architect)’의 페터르 카우벤베르흐(Peter Couwenbergh ·58)이다. 한 지인의 소개로 그를 강남의 한 호텔에서 이른 아침에 만났다. 서울에서의 빡빡한 일정 탓에 출국 전 잠시 짬을 낸 것이다. 지티타워 이스트 바로 옆에 세워질 웨스트동의 설계 협의차 방한한 그는 한국의 화랑가도 두루 둘러보았다. 2006년 이래 30번 넘게 서울을 찾은 그는 유럽 건축계의 지한파다.
파도 물결의 이미지를 강남역 사거리의 랜드마크로 설정한 이유가 우선 궁금했다. 바로 옆에 웨스트동이 들어서면 이 같은 이미지는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파도같이 춤추는 듯한 GT타워. 남성적 직선공간에 여성적 곡선건축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
그는 건물 외관 디자인 못지않게 자연광을 충분히 이용하는 등 친환경적인 요소를 중시한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2대 친환경건축 인증제도가 있다. 하나는 미국 그린빌딩위원회가 만든 자연친화적 빌딩·건축물에 부여하는 친환경 인증제도 리드(LEED)다. 다른 하나는 영국에서 시작된 브리엄(BREEAM)이다. 건축강국 네덜란드는 2008년부터 브리엄을 채택하고 있다. 한국에선 리드가 대세지만 좀더 까다로운 브리엄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는 브리엄의 9가지 조건( 경영, 건강과 웰빙, 에너지, 교통, 물, 재료, 쓰레기, 토지 이용 및 에콜로지, 환경오염)이 충족됐을 때 명실상부한 친환경건물에 부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친환경건물을 만드는 데 오직 에너지 효율성만 강조할 뿐 공기순환 등 다른 요소들은 상당히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건강과 웰빙 그리고 건축자재 등이야말로 에너지 효율성만큼 중요한 요소로 인식돼야 한다.”
컨소트 아키텍트가 최근 설계한 네덜란드 렐리(Lely) 그룹의 건물은 브리엄 기준에서 최고점을 획득했다. 농업생산물을 기반으로 하는 이 회사의 이미지에 잘 부합하도록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에 주력했다.
컨소트 아키텍트의 40명 직원 중에 절반이 건축가다. 카우벤베르흐를 포함해 3명의 건축가가 공동 대표를 맡아 수주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학생 땐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비즈니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세계건축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컨소트 아키텍트와 네덜란드 건축의 강점은 뭔지 물어보았다.
“덩치가 작아 유연적 대처가 가능하고, 모든 구성원이 백화점식으로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건축가들은 모든 것을 분석한다는 말이 있다. 입지조건과 문화, 고객 기호 등을 조사해 하나의 정점을 만들어 나간다. 자연스럽게 과정 속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들도 재미있게 반영할 수 있다. 맨처음부터 핵심적 내용을 만들어 끝까지 끌고 가는 한국과 미국의 방식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설교하듯이 하는 이들을 제일 싫어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대화를 통해 서로를 배워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네덜란드 건축가가 고객을 대하는 전형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갤러리 등을 종종 둘러본다. 문화 이해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한국은 부자와 큰 회사들만 아트를 사는 것 같다. 네덜란드는 모든 사람들이 아트를 산다. 대신 차를 잘 안 사는 편이다. 차와 집만 사는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아트컬렉션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한국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그는 가족을 중시하는 한국에서 새로운 건축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한국도 일 중심에서 일이 부수적인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리조트같이 한 주에 2∼3일간 2∼3대가 가까이서 거주하면서 같이 즐길 수 있는 건축 수요가 기대된다.”
네덜란드 화훼옥션하우스와 첨단 낙농축사 등을 건축하면서 친환경건축의 기반을 다진 건축가 페터르 카우벤베르흐. 그는 한국에서 친환경·친가족적인 건축을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마을이 자연 속에 옹기종기 그냥 내려앉은 모습이다. 사찰의 자그마한 부속건물들도 통일된 규격 없이 자연에 따라 크기와 모습을 달리하며 나름의 디테일을 갖추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이다.”
그의 아내가 아티스트이자 규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덕에 컨소트 아키텍트 사무실 공간에선 1년에 세 번 미술전시회가 열린다. 고객에 대한 문화적 서비스다. 그의 장인은 암스테르담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갤러리스트다.
물과 어우러진 네덜란드 렐리 (Lely) 그룹 본사. 컨소트 아키텍트가 최근 설계한 건축물로 친환경 인증에서 최고점을 획득했다. |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