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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무얼 먹을까? 무얼 먹으면 기운이 좀 날까? 늘 먹는 것 말고 색다른 걸 먹어야 할까? 읽고 있던 책을 덮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선다. 내가 하는 음식은 늘 그게 그거니 색다른 걸 먹으려면 외식을 할 수밖에. 이곳저곳 음식점 간판들을 기웃거려 본다. 생소한 메뉴는 먹을 줄 몰라 겁이 나고, 아는 메뉴들은 비슷비슷해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그냥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즉석요리로 때워버릴까? 메뉴를 쉽게 정하지 못하는 사이 옆 동네까지 와버려 다시 돌아가기도 그렇고 또 조금 지치기도 하여 에이, 눈앞에 보이는 생선요리 집으로 들어갔다. 겉보기와 달리 실내는 꽤 쾌적하고 깔끔했다.

사실 배고픈 내게 필요한 건 무슨 거창한 음식도, 놀랄 만큼 특별한 음식도 아닌 건강한 기운을 북돋을 정도의 간단한 한 끼일 뿐인데…. 뭐 대단한 걸 먹어보겠다고 옆 동네까지 걸어와서는 결국 주문한다는 게 생선을 곁들인 가정식 백반이라니.

조금 한심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예상외로 음식이 꽤 맛있고, 정갈해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씩 펴지고 생기도 제자리로 돌아와 방글거리고 있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더니, 내가 그 촌스러운 한국인 중 하나였구나. 대대손손 내려온 단순하고 소박한 집밥 같은 걸 먹어야만 힘이 나고 안심이 되는.

 

이런 나를 보고 ‘음식의 언어’를 쓴 괴짜 학자 댄 주래프스키는 뭐라 할까? 좀 있어 보이는 프랑스식 메뉴나 이탈리아식 메뉴 앞에선 어떻게 먹는 줄 몰라 몸이 굳어버리는 나를 향해 그는 무어라 말할까? 아마도 내 내면 깊이에 샘솟는 욕망도 이루고자 하는 성취욕도 없다고 개무시하겠지. 아무렴 어때. 애초부터 내겐 샘솟는 음식 욕망도, 요리에 대한 열렬한 관심도 없었는걸. 그렇다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나 먹는 걸 보고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뿐만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그의 이론에 반박할 생각은 전혀 없다. 대부분 맞는 말이고, 나 역시 그런 이유로 헤어진 사람들도 있으니까.

단지 푸르른 가을날, 색다른 걸 먹겠다고 나와서는 그러지 못한 내가 너무 촌스럽고 민망해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는 것뿐이니까. 내가 봐도 내 의식주는 다른 사람에 비해 티 나게 단순하고 촌스럽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 메뉴는 늘 하던 식으로 어패류 된장국과 가지, 오이무침이나 해야겠다. 아무리 내 밥상이 남보다 보잘것없이 단순하고 간단해도 나는 나를 위해, 내 건강을 위해 정성껏 밥상을 차리고, 그 밥상에 고마워하며 언제나 맛나게 먹어왔으니까.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백석의 시구처럼. 그런 마음으로.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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