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재벌과 부자들이 미국에 별장과 주택 등을 대거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대부분 부동산을 취득하면서 불법과 탈법을 일삼은 것으로 밝혀져, 세무 당국의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KBS 탐사보도팀은 국내 8대 재벌일가와 300대 부호, 벌금과 추징금 미납자 등 1800여명의 미국 부동산을 조사한 결과 272건을 찾아냈다고 24일 밝혔다.
이 보도에 따르면 미국 서부에서 부촌으로 손꼽히는 LA 인근 뉴포트 비치 일대에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조현준 효성 사장 ▲이미경 CJ 부회장의 저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현준 사장은 매입 당시 외환거래법의 신고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KBS가 LA 등 미국 서부에서 확인한 재벌과 부호들의 부동산 거래는 73건이었고, 매입가 기준 평균 15억원 수준이었다.
뉴욕 맨하튼의 50층짜리 한 빌딩은 한국인 부호들이 이웃사촌을 이루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해당 콘도는 이른바 ‘회장님 빌딩’으로 불린다. 특히 이곳에 콘도를 가지고 있는 애경 장영신 회장은 조세회피처에 이른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콘도 43층에는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이, 46층에는 농심그룹 신동원 대표가 보유하고 있다. 노루표 페인트로 유명한 한영재 회장도 이 콘도를 보유하다 지난 2013년 말에 매도했다. 금액은 집의 층수와 넓이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회장들의 집은 대략 20억~30억원 선이다. 이 건물 33층에는 탤런트 송혜교씨의 콘도가 자리잡고 있다.
해외부동산 투자 자유화 이후 한국인이 가장 많이 몰리는 하와이에 지난 연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장을 짓기 위해 140여억원에 부지를 매입했다.
호놀룰루 시내 고급 콘도에는 많은 재벌들이 소유주로 이름을 올렸다. 하와이 지역의 거래건수는 110건으로 가장 많고 평균 매입가도 가장 높다.
하지만 소유주 명의 중 상당수는 페이퍼컴퍼니인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한인 부호가 소유한 부동산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와이 마우이 섬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19살 생일에 부모에게 받은 고급 리조트가 있었다. 조 사장은 이를 되팔아 8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지만 거래 신고를 하지 않아 국내에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KBS는 전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외동딸인 정경희씨 부부는 1990년대부터 하와이 부동산을 사고팔면서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 회장은 미국에서 모두 4건의 부동산을 사고 팔았지만 신고한 건 한 건 뿐이었다.
지난 2006년 5월 이전엔 투자 목적의 해외 부동산 취득이 사실상 금지돼 있었다. KBS가 찾아낸 272건의 부동산 거래 가운데 64%는 바로 이 시기에 이뤄졌다. 2008년 해외부동산 투자가 완전 자율화된 뒤에도 많은 재벌과 부호들은 단순한 신고 의무 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사진=KBS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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