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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글자, 조선을 움직이다' 특별전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서 2015년 2월까지
조선은 불교를 배척하며 성리학을 국가의 새로운 이념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수백년간 굳건했던 불교를 하루아침에 일소할 수는 없었고 혼란을 어쩌지는 못했다. 조선이 마련한 해결책은 서적의 보급이었다. 성리학을 담은 서적을 보급해 백성을 포용하려는 의도였다. 서적의 보급은 활자의 개발을 전제로 했다. 

태종은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주자소를 설치하여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들었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세종대에 정착됐고, 인출량과 품질을 대폭 개선한 ‘경자자’(庚子字·사진)가 제작되기도 했다. 서체의 아름다움 덕분에 6번이나 다시 만들어진 ‘갑인자’(甲寅字) 역시 세종대에 처음 나왔다.

금속활자 기술은 세조대에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세조는 당대 명필이었던 강희안, 정난종의 서체를 바탕으로 각각 ‘을해자’(乙亥字)와 ‘을유자’(乙酉字)를 제작하게 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글자를 쓴 ‘정축자’(丁丑字)도 만들었다.

번성하던 금속활자 문화가 꺾인 건 임진왜란 이후였다.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손실에서 금속활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복구를 시도한 것은 광해군이었다. 주자도감을 설치해 금속활자의 전성기를 재현하려 했다. ‘무오자’(戊午字)가 이때 제작됐다.

시간이 한참 지난 정조대에는 주자소를 복원하여 ‘정유자’(丁酉字)’, ‘임인자’(壬寅字), ‘정리자’(整理字) 등을 각각 수십만 개의 활자로 제작했다. 규장각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출판 사업도 진행됐다.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내년 2월까지 열리는 기획특별전 ‘움직이는 글자, 조선을 움직이다’는 조선의 금속활자 문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금속활자로 인쇄한 전적(典籍)과 문방사우를 중심으로 준비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국가의 통치 이념을 전파하고, 임진왜란 이후 문화를 부흥시키는 데 금속활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던 데 초점을 맞추어 뛰어난 인쇄술과 금속활자본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02)541-3523∼5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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