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진 목사는 “기독교는 웬만한 외부의 비판이나 질타에도 끄떡하지 않는 견고한 성이 됐다”고 우려하고 있다. |
영성운동가 김진(52) 목사가 새해 벽두부터 한국기독교에 핵폭탄 같은 쇼킹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는 대안연구공동체가 개설한 인문학 강좌 “예수의 열 세 번째 제자, 니체’에서 이 화두를 하나하나 입증할 계획이다. 강좌는 오는 19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4시 서울 삼각지역 근처 ‘살롱 휴마니타스’에서 10차례 진행된다.
김 목사에 따르면 한국 기독교는 잘못된 방향으로 질주하며 무너지고 있다. 기독교 내부에는 스스로 변화시킬 힘도, 방편도 없다. 그는 이제라도 기독교가 다시 성찰해 제 길을 찾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한다. 그 해답을 김 목사는 니체의 저서 ‘안티크리스트’에서 찾는다. 그의 기독교 비판의 진의는 무엇일까. 기독교인들만 향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 비판은 서구문명의 핵심이며, 기독교 이해 또한 서구사상을 이해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강좌는 실존주의 선구자 니체의 진면모와 기독교의 문제점을 동시에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김 목사는 한신대 대학원을 나와 199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5년 넘게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2000년대 초 명상모임 씨알수도회를 만들어 상임이사로 활동했고, 서울 회현역 근처에 '예수 도원(道園)'이라는 명상원을 열어 영성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2004년 인도로 건너가 8년간 공동체 운동을 벌이다 지난 2012년 귀국해 1년 가량 경기도 성남시 주민교회 담임목사를 맡기도 했다. 지금은 삼각지 역 근처에 힐링스테이를 지향한 ‘살롱 휴마니타스’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김 목사와 일문일답이다.
-왜 니체가 예수의 13번째 제자인가.
통상적으로 우리는 예수의 제자를 열 두 명으로 이해한다. 니체는 그 제자를 이어가는 또한 명의 제자라는 뜻을 담고 싶었다. 왜냐하면 니체가 기독교를 혹독하게 비판한 사람이지만 그 비판에는 예수가 말한 참사랑, 인간다움, 그리고 표현은 달라도 구원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만약 예수가 이 땅에 다시 와서 오늘날 기독교를 보게 된다면 니체와 손잡고, 아니 그보다 더 철저하게 질책했을 것이다. ‘니체가 예수의 13번째 제자’라는 표현은 니체의 뜻과 예수의 뜻이 다르지 않다는 확신의 소산이다. 다시말해 니체가 예수의 현재 마음을 읽고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 신학적 상상력으로 니체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예수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 중 하나일 것이다.
-기독교가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면 누구의 종교인가.
예수는 기독교를 만든 창시자도 아니고, 또 예수 자신이 기독교인도 아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단지 ‘역사적 예수에서 출발한 그에 관한(about) 종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둘의 연관성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대신 교리화 된 예수, 기독교가 우상시킨 예수만이 난무한다. 사실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삶을 회복하고, 실제 현실 속에서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을 내세화, 비현실화 시켜버렸다. 하나님 나라도 죽어서 가는 천당이고, 구원 또한 죽음 이후에 얻어지는 결과물로 사고하게 만들었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런 기독교를 ‘예수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에 대한 모독이고, 예수가 전한 진리를 폄하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남과 자신을 분리하는 타자화를 추종하고 있다는 증거는.
서구 기독교 사상은 이분법적 사고의 원범(原犯)이다. 즉, 하늘과 땅, 현재와 내세, 죄인과 의인, 인간과 신, 남자와 여자 등등 관계 분리된 이원론적 사고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현재 많은 기독교 사상가들이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관계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주장하고 있지만 기독교는 아직도 그 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의 잔재는 타인에 대한 곡해로 남아 있다. 그 중 하나가 남의 죄나 잘못을 자신과는 무관한 행동으로 보고 남을 자신에게서 타자화시킴으로써 보이지 않게 자신은 ‘의인’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타자화 습성이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공감능력을 떨어트리고, 예수가 비판한 바리새인적인 신앙양태를 지니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독교가 참사랑이 아닌, ‘동정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동정의 종교로서 기독교'는 니체의 기독교 비판의 핵심적인 표현이다. 니체는 그의 저서 ‘안티크리스트’에서 ‘가장 큰 해로운 것은 모든 실패자와 약자에 대한 동정행위’라고 말하고, 기독교가 바로 이런 악덕을 행하는 종교로 본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기독교가 자신들의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눔, 섬김, 동정에 함의된 저의(底意)를 파헤친다. 예수 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했지 ‘동정’하라고 한 적은 없다. 동정은 약함을 합리화시키고, 또 인간으로 하여금 비주체적, 수동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니체의 표현에 따르면 동정은 인간을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힘을 상실하게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동정에 의해 인간의 삶과 생명력의 총체적 손실이 이루어 질 수 있다. ‘힘에의 의지’를 꺾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예수의 사랑실천 계명을 잘못 실천하는 것이다.
![]() |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그는 ‘기독교에 구원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반성의 방향을 제시한 인물이었다. |
‘예수와 기독교는 관련이 있는가?’ ‘기독교에 구원이 있는가?’ ‘현재 기독교는 변질 된 것인가 아니면 애초부터 태어나지 말아야 할 종교였는가?’ 이런 질문과 반성의 방향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니체(Friedrich Nietzsche)다. 니체는 ‘예수’라는 존재와 ‘기독교’라는 종교를 구분해서 사고한 철학자였다. 그럼에도 지난 수 백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니체에 대한 기독교 진영의 무지와 오해, 혹은 곡해로 보석 같은 니체의 그리스도교 이해는 사장(死藏)되었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그리스도교는 그의 예언대로 더욱 더 비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의 비판을 기꺼이 받아드려 통회하고 자성의 기회를 가졌더라면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종교’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와는 정반대로 니체라는 존재는 기독교의 원수 중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그의 예언자적인 말들은 난도질당해 묻혀 버렸다.
-그렇다면 니체는 기독교인이었는지.
전통적인 의미에서 기독교인이라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니체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나 목사 아들로 태어나 그가 사상적. 신앙적 회심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 때 목사의 길을 가고자 했었고, 또 충실한 신앙인으로서 생활했던 것은 분명하다.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운명을 충실하게 받아들이고 극복해 낸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 많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운명을 극복하고, 인간행복의 길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니, 무슨 말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저의 책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에서 자세하게 밝혔다. 간단하게 말하면 모든 기독교인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기 보다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닫힌 교리를 믿는 수준의 신앙생활을 비판하는 말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을 믿고 따르고, 그의 삶을 재현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를 제대로 믿는 이들이 많지 않는 기독교인의 현실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뜻에서 진보 기독교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썩은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의 행태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보수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소위 ‘진보’ 기독교에 몸을 담고 있는 신학자, 목회자, 평신도들의 활동 또한 소중하다. 그러나 이런 대응들이 하나의 관성화된 실천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저 또한 이런 저의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진보적 기독교의 사고나 실천을 보면 진영논리,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지금은 예수의 저 말 ‘너희가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라는 말을 깊이 되새겨야 할 때라고 본다. 그리고 뿌리부터 새로워져 한다는 각오로 기독교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공부와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이런 점에서 니체의 기독교 비판을 곱씹어 봐야 한다.
-니체를 돌파하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돌파한다는 말인가.
정확하게 말하면 니체의 기독교 비판을 피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정직하게, 정정당당하게 맞서고 또 돌파해서 기독교를 새롭게 하는데 또 하나의 방향으로 삼자는 뜻이 담겨 있다. 직접 그의 기독교 비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며 섭렵해서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의 책 “안티크리스트” 독파(讀破)가 돌파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인문학 강좌 ‘예수의 열 세 번 째 제자, 니체’가 한국 기독교에 핵폭탄 같은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이번 인문학 강좌에서는 우리가 기독교에 대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신성모독적이고, 위험한 발상의 시도다. 그동안 기독교를 유지시켜 온 이데올로기적 근간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니체의 사상은 다른 영역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그의 핵심 사상인 기독교 비판에 대한 이해는 매우 더디다. 니체는 ‘망치를 든 철학자’이다. 제 표현에 따르면 ‘모난 돌멩이’이다. 기독교 안에서 예수의 삶과 사상과 관련 없는 것은 파괴하고, 해체되어야 한다.
-인문학 강좌의 교재가 니체의 ‘안티크리스트’ 인데, 어떤 책인가.
이 책은 니체의 본격적인 기독교 비판서다. 그의 책 이곳 저곳에서 기독교와 기독교의 신(神)에 대한 비판이 부분적으로 나오는데, 이 책은 그것을 하나로 모아놓았다. ‘기독교에 대한 저주(Fluch auf das Christentum)’라는 과격한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그만큼 니체는 기독교를 미워했고 또 저주하고 싶었다. 원래 이 책은 “모든 가치의 전도”(Umwertung aller Werte)라는 네 권으로 기획된 책의 첫 책이었다. 그런데 이 첫 책으로 만족했고 처음에 이 책의 부제를 ‘모든 가치의 전환’이라고 붙이기도 했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그동안 서구 사상이 붙들고 있던 가치를 뒤집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책의 독일어 제목이 ‘Der Antichrist’인데, 영어 단어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 Christ를 ‘그리스도’로 오독하곤 한다. 그래서 초기 번역 중에는 ‘반 그리스도’라는 제목을 단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니체는 그리스도, 즉 예수를 비판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물론 예수의 사상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이고, 이 책은 전적으로 기독교의 사상과 행태를 반대하는 책이다. 이것을 구분해야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정관사 ‘Der'를 붙였다는 것은 자신이 바로 그런 ‘안티크리스트’ 사람(者)임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이다.
-강의 방법은.
하루 두 시간 정도 하려고 한다. 함께 한글 텍스트를 읽고 설명하고 강의한다. 미진한 해석은 독일어 원본과 비교하려고 한다. 니체의 문체는 아주 특이하고 또 은유적인 표현이 많아서 깊은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되도록 올바르게 독파해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 강좌를 개설한 목적과 이 강좌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일차적인 목표는 니체의 기독교 비판의 뜻과 내용을 파악하는데 있다. 그리고 그 비판이 담긴 현실적 함의를 끄집어내 기독교를 하나님과 예수의 뜻에 합당한 종교로 혁명해나가는데 이론적인 무기를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또한 이 강좌를 시작으로 기독교가 현재 쏟아지고 있는 인문학의 도전들을 어떻게 받아내고 또 정확하게 응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누고 싶다.
-강의장소 ‘살롱 휴마니타스’는 어떤 곳인지...
인도에서 시도한 공동체적 삶의 또 하나의 형태다. 창고를 개조해서 작은 살롱을 만들었다.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 문화가 있는 시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인문학적 만남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휴마니타스’라는 이름을 걸었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틀에 구애받지 않고 이곳에 와서 자유롭게 대화하며 삶을 나누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참가비 15만원(10회), 교재 ‘니체전집’(책세상) 가운데 ‘안티크리스트’ 부분. 문의 : 02-777-0616. 강의장소 참조 : blog.naver.com/pinetreegh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