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부터 생각해야
정파적 결정 떠나
과제 해결 인물 필요 공석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공모절차가 한창이다. 서류심사 통과자 6명의 전문성과 역량을 알아보는 심층 인터뷰가 오는 16일쯤 진행되고, 이 중에서 3명을 뽑아 최종 검증절차를 거처 최종 1명을 낙점할 예정이다. 이르면 이 달 중, 늦어도 내달 초에는 신임관장이 얼굴을 드러낼 것이다.
미술계엔 벌써부터 서류심사 통과자 6명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최효준 경기도미술관 관장,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 미술평론가 윤진섭, 김찬동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조명계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 평론가인 조광석 경기대 교수 등이다.
비교적 이름이 생소한 조명계 교수는 소더비 한국사무소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클림트 전시에 관여한 인물로 알려졌다. 조광석 평론가는 한원미술관 관장을 지냈고, 김찬동 위원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아르코미술관 관장으로 일했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국 미술계를 이끄는 수장으로 꼽히는 자리라 미술계에선 어떤 인물이 될까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일군의 미술인들은 10개항의 부적격 조건까지 내세우며 일부 인물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 문제 등 사생활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특정인이 이미 윗선에서 낙점됐다는 파다한 소문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대선 캠프에 관여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여러 정황이 미술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관장 인선 이후에 자칫 불협화음과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사항들이다.
해법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흔히 관장이 갖춰야 할 자질로 전문성과 경영마인드, 그리고 국내외 미술계 인사와의 폭넓은 인맥을 꼽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칙론에 불과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 누구나 머리를 끄덕일 수 있는 소장품과 기획전시가 전무한 것이 국립현대미술관의 현주소다. 미술관의 기본을 세우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는 얘기다. 야심차게 마련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조차도 기대애 못 미치는 이유다. 많은 미술인들은 실망스럽다는 말은 입에 달고 다닐 정도다. 심지어 서울관의 경우 이웃해 있는 K갤러리 전시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과 미국 미술관을 어설프게 겉모습만 벤치마킹한 결과다. 그들은 좋은 소장품을 베이스로 출발했다. 미술애호가 등이 중심이 된 ‘패밀리’가 미술관 설립을 주도하면서 특색 있는 미술관으로 성장했다. 자연스럽게 권위가 생기고 의미 있는 곳에 돈을 쓰려는 후원자들의 모금이 합세하게 됐다. 색깔 있는 기획전의 선순회 구조도 만들어졌다. 소장품과 나름의 기획전이라는 미술관의 기본요건을 초기부터 구축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미국 미술관의 경우 전시기획은 큐레이터에게 맡기고 관장은 후원금 모금에 집중하며, 유럽 쪽은 큐레이터 출신 관장이 기획에 적극 참여하는 편이다. 어느 쪽도 우리와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제1 조건은 한국 미술관의 현실을 알고 기본부터 다시 세울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적어도 미술관 운영 경험 있는, 미술작품과 미술관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다. 미술 흐름에 대한 통찰력도 필수다.
관장 직급도 국장급에서 국립중앙박물관장처럼 차관급으로 격상해야 한다. 미술정책을 윗선과 허심탄회하게 논의 할 수 있어야 국립현대미술관의 산적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 ‘페이퍼 워크’론 한계가 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그렇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을 바로 세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적임자는 있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정파적 결정이 안 되기를 기대해 본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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